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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15. 2021

180~330일: 여행, 정말 해도 되는 거 맞나요?

고투트래블 캠페인을 실시하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야심 차게 '고투트래블(Go to Travel)' 캠페인을 내놓았다. 여행을 하면 정부에서 숙박료의 반을 돌려주는 파격적인 프로모션이었다.


예를 들어, 10 원짜리 숙소에 묵고자 한다면, 정부로부터 35% 지원받아 6 5 원에 예약할  있다. 그리고 숙박요금의 15%에 해당하는 1만 5천원은 현지 기념품 가게나 식당에서   있는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어차피 여행을 가면 외식과 쇼핑은 필수이니, 숙소를 반값에 이용하는 셈이었다.


없던 여행 욕구도 샘솟을 법한 일본 정부의 관광 장려 캠페인. 그러나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반응은 한 마디로 '정말 이래도 돼?'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이동을 제한하고 자숙을 권고하는 때에, 일본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여행을 재촉하는 꼴이었으니.


하지만 여행사 콜센터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부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은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 이대로 관광이 계속 침체되면, 언제 또 해고 바람이 불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기분전환 일지 몰라도, 어떤 기업에게는 생존이, 어느 직원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적극으로 고투트래블 캠페인을 홍보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몇 개월 사이에 코로나19 이전에 가까운 예약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사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해외여행을 즐기는 인구가 적다. 매년 국외로 출국하는 일본인 수는 인구의 겨우 15% 수준인 약 1,800만 명(참고로 우리나라 사람의 해외여행 비율은 코로나19 이전에는 50%를 넘었다고 한다).


애초에 해외여행이 활발하지 않으니, 일본 사람이 주 고객인 여행사는 국내여행만 정상화되면 코로나19에도 버틸만해진다. 고투트래블 캠페인은 일본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관광업계에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화벨도 다시 바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들어오는 문의는 십중팔구 고투트래블 캠페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상품은 할인 대상인지 아닌지, 맞다면 할인 금액은 얼마인지, 환급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상품권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 캠페인에 관한 세세한 내용까지 숙지하고 있어야 신속한 안내가 가능했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는 도쿄 거주자를 할인 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다시 허용하는 등, 여러 번 규정을 바꾸었다. 그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사내 지침을 확인하거나, 고투트래블 사무국 홈페이지를 방문하곤 했다.


이처럼 여행 예약과 문의가 폭증하는 상황이 방역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 기관에게는 재앙이었겠지만, 나와 같은 관광업계에 종사자에게는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고투트래블 캠페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실직자가 되는 일은 시간문제였을 테니. 캠페인 덕분에 매출이 회복된 회사는 해고된 직원 일부를 재고용하기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한 사람이 종사하는 분야나 위치가 인성까지 개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장’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민간인으로서의 나’는 고투트래블 캠페인을 반대했지만, ‘여행사 직원으로서의 나’는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처럼.


상담 중에 내게 ‘진짜 여행해도 괜찮은 걸까요?’라고 묻던 한 젊은 고객을 기억한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있는 어떤 목소리를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답변을 망설였다. 어차피 그분도 내게 정답을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고투트래블 상품은 전날까지 무료 취소가 가능합니다’라는 기계적인 안내뿐이었다.


내가 양가적인 태도로 밥벌이를 하는 사이,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던 일본 정부의 발언은 허황된 꿈으로 판명 났다. 12월 초, 전국에서는 하루에 수 천명의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고,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다. 의료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캠페인 중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결국 연말연시 대목을 앞두고 고투트래블 캠페인은 전면 중단됐다. 그리고 정부의 발표가 나기 무섭게 상황판의 대기 콜 수와 이메일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일본어 콜센터 표현:

ご用件をお伺いしてよろしいでしょうか。
(고요우켄오 오우카가이시떼모 요로시이데쇼우까)

용건을 여쭤봐도 될까요?


대표 이미지: Photo by ian dool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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