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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10. 2021

60~90일: 마른 하늘에 떨어진 구조조정이라는 날벼락

코로나19발 집단 해고를 겪다

일본에서 첫 긴급사태가 발령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감축을 갑작스레 통보했다. 그리고 자신이 해고 대상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이메일을 몇 시간 뒤 보내기로 했다. 전 직원이 재택근무 중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대학 합격도, 복권 당첨도 아닌 직장으로부터의 퇴출 여부를 집에서 이메일로 받아야 하는 심정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메일이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최악의 결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다. 서른 명 넘는 동기들과 만든 라인 그룹 채팅방도 불안과 걱정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이별을 고하는 동기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누군가는 격렬히 분노하며 회사와 싸우겠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며 빠르게 단념했다. 휴대폰 화면 안에서 끝없이 올라왔다 사라지는 일본어 메시지들을 보며, 얼른 해고 통지를 받는 편이 차라리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도 메일이 도착했다.


당신은 감원 대상이 아닙니다.


그날, 나는 채팅방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사 규모를 약 80%로 줄인 구조조정은 전 부서에 영향을 미쳤지만, 2020 도쿄 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신입 사원을 많이 뽑은 콜센터에 유독 타격이 컸다. 동기 중 남은 인원은 겨우 1/3. 입사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수습사원에 불과했으니,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회사가 해고자를 선정한 정확한 기준은 지금도 알지 못한다. 하루에 해결한 문의 수와 고객 평가로 결정되는 KPI가 분명 영향을 미쳤겠지만, 나보다 경험도 능력도 많은 베테랑 사원이 감원 대상이 된 것을 보면 꼭 그뿐만은 아닌 듯했다. 입사 교육을 담당했던 트레이너도, 내게 처음 링크드인 메시지를 보냈던 채용 담당자도, 상담 중에 모르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친절히 알려줬던 수많은 선배들도 그렇게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허망하게 내쳐졌다. 그리고 수명을 연장받은 나는 다음 날에도 태연히 상담에 임해야 했다.


처음부터 대단한 충성심이나 사명감을 갖고 지원한 일은 아니었지만, 집단 해고를 계기로 회사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크게 줄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솔직히 지금도 의문이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대상자를 추려 이메일로 통보한 방식이 과연 이상적이었는지. 물론, 근속 기간에 상관없이 몇 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지급하고,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자 일부 직원을 재고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먼저 희망 퇴직자나 휴직자를 받거나, 전 직원의 근무 일수를 줄여볼 수는 없었을까.


그토록 단호했던 경영진의 결정에는 내가 알 수 없는 근거가 있었겠지만, 이때부터 감정노동자인 내 감정은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한다.


일본어 콜센터 표현:

大変恐縮ではございますが…
(타이헨 쿄우슈쿠데와 고자이마스가...)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대표 이미지: Photo by the blowu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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