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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10. 2021

30~60일: 초보 여행사 상담원, 코로나19를 만나다

일본 콜센터에 적응하다

여행사에 입사해 첫 한 달간은 시스템 사용 법과 매뉴얼, 그리고 전화와 이메일 매너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당연히 일본 내국인 대상으로 만들어진 교육이었기에, 일본어가 부족한 내게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본격적으로 상담 전화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20년 2월 중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로 일본 전체가 시끄럽고, 전국 곳곳에 확진자가 출몰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메르스나 사스처럼, 조금만 조심하면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은  지나가리라 여겼다. 그러나 3 초부터 나라  입국 제한과 격리 조치가 생겨나자, 여행 취소와 변경 문의가 본격적으로 빗발치기 시작했다. 출근하면 상황판에는  천통의 이메일이 쌓여 있었고,  전화는 '통화 가능' 상태로 바꾸기 무섭게 들어왔다. 콜센터에서는  통의 전화가 끝나면, 상담 내용을 정리하거나 다른 필요한 작업을 하기 위한 ‘후처리시간이 주어진다. 3~4 정도는 상사의 별도 승인 없이   있는데, 대기 중인 수많은  수를 보면  필요한 업무를 위해 1,2분을 쓰는 데도 진땀이 났다.


하지만 상담원들이 최선을 다한다 한들, 고객 입장에서는 이메일 답장을 받는 데만 1주일 가까이, 전화 한 통이 연결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리는 답답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긴 대기 시간으로 증폭된 불쾌감은 고객의 상기된 목소리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평소에는 '신세 지고 있습니다(お世話になっております)'나 '바쁘신데 죄송하지만(お忙しいところすみませんが)'으로 말문을 열던 일본인도 느낌표가 열 개쯤 붙은 듯한 '여보세요(もしもし)'를 외치거나, 행여라도 전화가 끊어질까 속사포처럼 용건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전화가 연결된 것 자체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아무리 급해도 전화 상담에는 본인 확인이 필수. 이름과 연락처가 정확히 일치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자신의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고객이 많았다. 그런 경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예약 상품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할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인만 해주면 문제가 없는데, '왜 귀찮게 그런 걸 확인하냐'라거나 '나보고 또 전화해서 몇 시간을 기다리라는 말이냐'라고 대뜸 화만 내면 상담이 지연될 뿐이다. 가족이나 친구를 대신해 전화한 경우는 더 난처하다. 예약자 본인이 함께 있다면 바로 전화를 바꿀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삼자로 취급되어 규정상 상담을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행사에서 구입한 환불불가 상품을 무료로 취소하거나 변경하려면, 얽혀 있는 파트너 회사나 호텔, 항공사 등에 상담원이 일일이 연락해 위약금 면제 동의를 구해야 한다(모든 여행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다닌 곳은 계약된 업체의 동의만 있다면 예약 조건과 상관없이 환불이 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회사도 업무량이 급증한 것은 마찬가지. 커뮤니케이션은 한없이 지연됐고, ‘왜 바로 환불해주지 않느냐’라는 고객의 성화를 오롯이 받아내는 일은 나와 같은 상담원의 몫이었다. 다행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대부분의 파트너 회사와 항공사, 호텔은 위약금을 면제해 주었지만, 환불 불가 원칙을 고수하는 곳도 간혹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코로나19에 완벽히 대비하지 못했다. 여행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빠른 상담과 위약금 협상을 위해 한 기수에 사상 최대 인원을 뽑을 정도로 인력을 충원하고, 초과근무 수당도 지원했다. 그러나 초유의 사태에 폭증해버린 문의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연습은 실전이라고 했던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하드 트레이닝' 덕분에 나는 업무에 빠르게 익숙해져 갔다. 교육을 할 때 30분에 한 통 쓰기도 어렵던 일본어 비즈니스 이메일은 템플릿을 활용해 점차 10분에 한 통, 5분에 한 통, 1분에 한 통도 보낼 수 있게 됐다. 전화 대응도 마찬가지. 비슷한 문의에는 나만의 스크립트가 생겨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2020년 4월. 일본 정부가 첫 긴급 사태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수도권과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곧 전국으로 확대됐다. 외출과 이동에 대한 강제적인 조치가 없었음에도, 호텔과 식당, 백화점 등 수많은 상업시설이 휴업을 결정했다. 회사도 발 빠르게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생계와 직결된 업무가 아니라면, 모두가 여행은 물론 외출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예약이 취소됐다. 다섯 자리를 돌파할 것 같았던 상황판의 이메일 수는 어느새 0에 도달했다. 여행 상품이 팔리지 않으니, 고객 문의도 거의 전무한 상태. 콜센터 상담원은 예약자의 전화와 이메일, 채팅을 응대하는 사람이다. 바꿔 말해, 문의하는 사람이 없다면 상담원은 할 일이 없어진다. 1시간에 전화 한 통, 메일 한 통이 들어올까 말까 했으니, 불과 한 달 전의 혼돈 상태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가해진 업무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기존 예약이 취소되고, 신규 예약이 들어오지 않으면 여행사는 이익을 내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에 종식되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 회사도 휴업하는 건 아닐까,’ ‘단축 근무나 휴직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직원들 사이에도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업 부진을 겪던 회사는 기어코 결단을 내리고야 만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부득이하게 직원 감축을 결정했습니다. 대상자는 내일부터 업무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본어 콜센터 표현:

大変お待たせしました。
(타이헨 오마타세시마시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Glen Carri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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