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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09. 2021

0~30일: 내가 원하는 회사, 나를 원하는 회사

일본 콜센터에 입사하다

평소에 이용하던 여행사의 채용 담당자는 링크드인에 올린 내 프로필을 보고 연락했다고 했다. 일본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담원을 뽑고 있으니, 지원을 검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연이은 기업의 거절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나는 면접 초대장을 받은 것만으로도 기뻤다.


다만, 업무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커스터머 서포트'라는 고상한 단어를 쓰고 있었지만, 결국 감정 노동의 대명사인 콜센터가 아닌가. 게다가 한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유일하게 희망이 보였던 한 스타트업 회사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나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님을 깨닫고 이력서와 함께 답장을 보냈다.


콜센터 업무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전화 통역 아르바이트 덕분에 일본어 전화 표현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종종 고객의 컴플레인을 전달한 적도 있었다. 물론 고객 문의를 직접 해결하는 일은 통역과 차원이 다르겠지만, 매뉴얼도 존재할 테고, 일본어를 향상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기회 아닌가. 다른 사무직 업무와 달리 퇴근 후 일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결정적으로 계약직이나 위탁이 아닌, 정직원으로 직접 고용하고 있었으며, 그만큼 보수도 높은 편이었다.


채용 절차는 온라인 언어 테스트와 인사팀과의 Skype 면접, 그리고 실무진과의 최종 면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단 6일 만에 이 모든 과정이 끝났다. 결과는 합격.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회사는 급성장 중이었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영어를 구사하는 내국인이 드물기에, 꼭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중급 이상의 일본어와 영어 실력을 갖췄다면 적극 채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두 차례에 걸친 면접 모두 압박 질문 하나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내 스펙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지원자가 귀했던 것이다. 면접장에서부터 합격을 암시했던, 매니저의 마지막 한 마디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저희 회사에서 예은 씨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실지 정말 기대됩니다.


2020년 1월. 반년에 가까웠던 경력단절녀의 취준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여행사 콜센터 업무는 단순히 말해 여행 상품을 예약한 고객의 각종 문의에 대응하는 일이다. 날짜 변경이나 취소의 경우, 해외 호텔 담당자와 조율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에 영어 능력이 필요했고, 때로는 한국어를 쓸 기회도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일본에 오기 전 근무했던 서울의 한 호텔에 직접 전화를 걸며, 속으로 반가워하기도 했다.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선배 사원이 "일하는 건 어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요"라고 당차게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 매일 욕설이나 성희롱에 시달릴 줄 알았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상식적이고 때론 상냥하기까지 했으니. 일본어로 고객 문의를 해결한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뿌듯하기까지 한 나날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벌고, 퇴근 후에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일상. 내가 꿈꾸던 삶 그대로였다.


그러나 몇 개월 뒤, 금세 진정될 줄 알았던 코로나 19 사태가 확산하며 내 직장 생활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는다.


일본어 콜센터 표현:

お電話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오뎅와 아리가또우고자이마스)

전화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Daniel McCulloug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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