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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08. 2021

일본 콜센터 상담원이었던 나의 이야기

이직이 결정된 것은 모처럼의 장기 휴가를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방문한 낯선 동네에서 나는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대사를 뱉어냈다.


"갑작스럽게 죄송하지만, 이 번 달을 끝으로 퇴사하고 싶어요."

"혹시 몸이 안 좋거나 한국으로 돌아가나요?"


"그건 아니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어서요. 다음 달부터 출근하기로 했어요."

"아쉽지만 잘된 일이니 축하해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퇴사 절차는 메일로 따로 보낼게요."


이직과 퇴사가 흔한 분야라서 일까. 상사는 덤덤했고 절차는 순조로웠다. 그 후 몇 통의 메일과 서류 작성을 끝으로 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20일 간의 콜센터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인 나는, 현지의 한 여행사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대우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때로는 우회적이고, 때로는 노골적인 사회적 차별도. 솔직히 말해, 학창 시절에 장래 희망으로 콜센터 상담원을 꼽아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내가 상담원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콜센터는 누군가의 1 지망이라기보다, 어쩌다가 흘러들어오는 곳, 혹은 다른 곳으로의 도약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곳에 가깝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여행사였기에 전직 호텔리어나 승무원, 혹은 다른 회사에서 고객 대응 경력이 있는 직원이 많았다. 물론 적성에 맞아 오랫동안 근무하는 유니콘 같은 직원도 없진 않았지만, 내가 경험한 어떤 분야보다 퇴사율이 높았으며, 남아있는 사람도 대부분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꿈꾸었다.


내게도 콜센터 업무는 원하는 미래를 위해 견뎌야 하는 돈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경력이 단절된 외국인 기혼 여성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겨우 구한 일자리였으니, 힘들어도 '이 정도면 할 만하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이 어딨어'라는 말로 어리광을 잠재웠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3년 이상 버틴 직장이 없었기에, 또다시 사직서를 내는 일이 부끄럽기도 했다. 내 우울감은 단순히 코로나19 탓이라고, 다른 곳에 가도 똑같을 거라며 자신을 속이던 시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담원 생활이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보수가 낮지 않았기에 가계에 큰 보탬이 되었다. 무엇보다 한국인으로서 경험한 일본 콜센터라는 특수한 경험이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하루에 적으면 30-40통, 많으면 70통 이상의 전화와 이메일, 채팅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일본인 고객을 상대했다. 업무 기록을 확인해보니 근속하는 동안 담당한 전화와 메일, 채팅은 1만4천 건에 달했다. 1박에 1~2만 원 하는 저렴한 숙소에서부터 100만 원 이상의 고급 호텔에 묶는 사람까지 경제력도 천차만별이었다.


일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스트레스 관리법 등 여러 방면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킨 계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브런치 북에서는 일본어가 완벽하지 않은 내가 현지 콜센터에 입사해 상담원으로 거듭나고,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가볍게 풀어보려 한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상담원으로 살았던 날들의 기억이 조각나 흩어지기 전에, 글로 단단히 붙잡아두고 싶어서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기 전, 지금까지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경험이 일본 생활이나 취업, 또는 콜센터 업무에 관심이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Quino A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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