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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Jun 08. 2021

입사 전: 처음부터 콜센터를 지망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콜센터 면접을 제안받다

주변 사람들은 어쩌다 일본에서 콜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냐고 물었지만, 적어도 입사할 때의 나는 어쩌면 콜센터야말로 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일본에 오게  시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때는 2015. 서울에 있는  호텔 홍보팀에서 근무하던 나는 ' 번쯤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 막연한 생각에 입사한  2 10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고 도쿄 유학길에 오른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종종 일본을 여행하고, 분기별로 일본 드라마를   작품씩 챙겨봤지만,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는  초중급 수준에 머물러 있던 상태였다.


퇴사 후 약 3개월 동안, 일본어 능력시험 N1을 목표로 종로에서 하루 4시간씩 수업을 받고, 광화문 엔제리너스에서 2시간, 그리고 집에 돌아와 2시간 더 공부하는 루틴을 반복했다. 여가 시간에도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시청했다. 살면서 영어 이후로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 몰두한 몇 안 되는 경험이었다. 늦깎이 학생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뛰어난 사교육 수준 덕분인지, 시험에 턱걸이로 합격해 출국 전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N1을 취득했다고 해서 일본어가 유창해진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부재 시 택배가 오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재배송을 신청해야 하는데, 유학 초기에는 전화 자동 안내 멘트 중 '호시지루시(星印, 별표)'를 알아듣지 못해 쩔쩔매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커피(コーヒー)'와 같은 단순한 단어조차 일본식 발음('코- 히-'에 가깝다)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점원과 어색한 대화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일본어에 조금은 자신감이 붙고, 퇴직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  좋게 구한 일이 전화 통역 아르바이트였다. 시급도 1,300 대로 높은 편이었고, 집과도 도보 5 거리였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의뢰는 한국인 관광객이 주로 이용하는 백화점, 수족관, 호텔 등에서 들어왔다. 우리나라 여행객과 일본인 직원 사이의 대화를 돕는 업무였는데, 대부분 원하는 제품을 찾거나 짐을 맡기는 정도의 단순한 내용이었다. 한동안은 옆에서 선배가 도와주는 데다 통역을 하면서도 온라인 사전을 찾아볼  있었기에 적응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보 티를 숨길 수는 없는 법. ‘있다’라는 같은 의미라 하더라도  사람이나 동물에게 쓰는 '이루(いる)'와 움직이지 않는 사물에 쓰는 '아루(ある)'를 혼동하는 등 단순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링거'처럼 사전을 찾아도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지 않는 경우 통역이 지연되기도 했다(일본에서는 영어 발음인 '린가(リンガー)'가 아닌 '점적(点滴, てんてき)'라는 표현을 쓴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년 반을 무사히 지속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언어 실력은 일취월장. 게다가 일본 슈에무라에서 '강남 오렌지' 컬러를 찾는 고객이 있을 때는 인터넷으로 컬러 코드를 찾아 전달하는 등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돌이켜보면, 어학원 수업보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은 생생한 표현이 일본에 적응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언어를 어느 정도 익힌 뒤 귀국할 생각이었지만, 일본에 예정에 없던 신랑감이 나타나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남편과 결혼한 후에는 잠깐 스타트업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8개월 만에 남편이 싱가포르로 전근을 가게 되어, 다시 자발적 백수를 자처한 채 따라갔다. 싱가포르에서는 여행 책과 칼럼을 쓰고, 영한과 일한 번역을 하며 소소한 벌이를 유지했다.


1년 뒤 일본에 돌아왔을 때, 잦은 이사와 여행 탓에 가계 경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실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의 경제 제재로 인해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고, 맡고 있던 일본 여행 콘텐츠 제작과 번역도 중단됐다. 다시 취업 시장에 내던져진 나는 서른이 넘은 외국인 기혼 여성. 그동안의 짧은 근속 기간과 경력 단절, 그리고 쓸데없는 고학력의 컬래버레이션도 고용인 입장에서 달가운 조건은 아니었으리라.


나 역시 글 쓰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자리는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 보았다. 영어나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직무라면, 아르바이트에서부터 비정규직, 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지원했다. 에이전시와의 면담도 매일같이 치렀다. 그러나 동기가 불순해서였을까. 서류 심사에서만 고배를 마시기 수십 번. 면접 후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는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듯한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야말로 ‘프리’한 프리랜서이자 취준생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링크드인에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Lee様, はじめまして。わたくし OOO旅行会社、採用担当の OOO と申します。

(이예은 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OOO여행사 채용담당자 OOO입니다.)


일본어 콜센터 표현:

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요로시쿠오네가이이따시마스)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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