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2
당선 연락으로부터 5일 후, 고대하던 이메일이 도착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음사 편집부에서 일하는 OOO입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한 번, '민음사'라는 이름에 또 한 번 놀랐다. 작가라는 호칭에도 적응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라니… 편한 호칭으로 불러달라 부탁드리려다, 오히려 그런 요청이 특별 대우를 바라는 일이 될까 봐 나도 편집자님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합세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선생님이 됐다.
하지만 호칭보다 놀라운 것은 역시 민음사라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메일이 도착하기 전, 나는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한 10군데의 출판사 중 어느 곳과 계약을 맺게 될지 궁금해 각 출판사의 SNS를 염탐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을 다루고 있으니, 일본 문화나 여행 책을 여러 권 펴 낸 두 군데 중 하나이리라 짐작했다.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책에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민음사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해외 고전 소설을 좋아한다면, 알록달록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책장을 장식할 로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독서 취향이 한국 문학에 편향된 나는 특히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한다. 다른 어떤 출판사의 선택을 받았더라도 놀랍고 기뻤겠지만, 민음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어서 신기함이 추가됐다.
그리고 감사했다. 민음사에 대한 충성심이 구름처럼 솟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민음사 북 클럽에 가입했을 텐데, 나는 민음사 유튜브를 구독하고 신간 몇 권을 전자책으로 읽는 데 그쳤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민음사TV에 취향을 저격당해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영상을 시청했다. 그동안의 민음사는 너무 고상한 나머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미지였는데, 민음사TV를 보며 낄낄대는 사이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이 피어났다. 출연진은 대부분 출판사 직원(이 점도 놀라웠다. 웬만한 애사심이 아니고서야 회사 유튜브에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나올 수 있을까?). 하나같이 차분하고 조리 있는 화술을 구사하시지만, 동시에 유연한 고집과 은은한 ‘똘끼(좋은 의미다)’도 느껴진다.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유머 코드 또한 내 취향이다.
미팅이 기다려졌다. 일본에 거주 중인 터라 아쉽게도 사무실을 방문하지 못하고, 영상을 통해 한국 문학팀 편집자 두 분을 만났다. 자세한 회의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간단한 인사와 내 글에 대한 감상, 향후 집필 일정과 구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원래 낯가림이 심한 나는 최근 코로나19로 내향성이 더욱 극대화된 상태.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썩 즐기지 않고, 영상 통화는 더욱 기피하는 편인데, 놀랍게도 모르는 사람과 영상 통화를 하면서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조금이라도 든 이유는 상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서가 아닌, 그 앞에서 어버버거리는 내가 창피해서였다).
반면에, 편집자 분들은 능숙하게 고장 난 작가와의 대화를 주도했다. 진심으로 '선생님'처럼 느껴졌다. 말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도 문제없을 만큼 어휘 수준이 높고 구성이 찰졌다(반면에 나는 스스로를 '쩌리'라고 표현했던가…). 작가나 동료의 말을 경청하고 절대 끊지 않는 태도도 우아했다(나는 가끔 말이 생각을 앞설 때가 있어, 콜센터에서 일할 때도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들어가는 게 참 어려웠다). 속으로 '이런 분들이 책을 쓰셔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회의에 참석하신 한 분이 공저자로 참여한 <책 만드는 일>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기도 했다(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OOO 선생님).
무엇보다 편집자로서 내 글을 나보다 신중하게 읽고, 깊게 탐구하신 애정이 느껴져 황송했다. 별생각 없이 쓴 문구나 내용도 인상 깊게 읽어주시고, 정확히 어떤 지점이 특별한가를 짚어주셔서 몇 번이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일본 콜센터에서 520일>뿐 아니라 다른 글까지 읽으시며 내 배경까지 파악하셨음을 대화 중에 여러 번 감지할 수 있었다.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 셀럽들이 왜 인터뷰를 하다 감격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문명특급 인터뷰는 사전 조사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분명 계약서를 사이에 둔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가진 업체나 클라이언트와의 업무 미팅과는 차원이 달랐다. '황홀하다'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이유가 뭘까. 출판이란 그저 이윤을 쫓는 사업이 아닌, 예술성과 사명감이 깃든 분야라 온기 있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특권 같은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내 전작을 내 주신 1인 출판사 세나북스 최수진 대표님과의 미팅도 맛집이나 카페 탐방에 가까웠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나만 즐거운 건 아닐까' 하고. 내게 글쓰기는 생계형 노동을 하지 않는 잠깐의 시간 동안 만끽하는 자아실현이다. 그러나 출판사도 결국 하나의 노동 조직이고 누군가의 일터다. 스트레스, 야근, 월요병을 유발하는 똑같은 회사다. 출판사 직원도 사람이기에 때로는 작가와 책을 대하는 일이 지긋지긋하거나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수상을 축하한다며 해맑게 손뼉 쳐 주시던 편집자 선생님들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렸다. 내 책이 완성되기까지, 그 외에도 내가 모르는 디자이너와 마케터 등 수많은 분들의 노고가 필요할 것이다. 그분들께 내 원고가 골칫거리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임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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