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되는 기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3

by 이예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이제는 꽤 진부하지만, 처음 듣는 이에게는 여전히 깨달음을 주는 말이 있다. 내게 가장 탐스러운 왕관이 인세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는 삶이라면, 감당하고 싶지 않은 무게는 유명세다.


유명세의 ‘세’는 세금 세(稅) 자다. 한 마디로 유명해서 내는 세금. 사전적 정의는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탓으로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연예인이 겪는 사생활 침해, 루머, 악플 등을 들 수 있겠다.


물론 내가 아무리 유명해지고 싶어 발버둥 친다 한들, 길을 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수군대거나, 내 일거수일투족이 원치 않게 기사화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현실성 있는 유명세라고는 내 글을 보고 내 인생 전체를 재단하고 비난하는 악플, 그리고 원치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내 작가 활동이 알려지는 것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 두 가지가 꽤 두렵다.


책은 자식과 비슷하다. 내가 낳았지만 내 소유물이 아니고(물론 저작권은 갖는다), 나를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책 한 권에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넣을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내 경험이나 감정을 깊이 파고들수록 ‘내가 발견한 나’에 가까워질 뿐, ‘남들이 보는 나’로부터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 아무리 내 입장에서 솔직하게 쓴다 한 들, ‘나’라는 존재가 이미 하나의 필터이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 여기에 독자의 고유한 시선과 해석을 한 번 더 거치면, 글 속의 나는 실제의 나로부터 저만치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불변성을 지닌 책과 달리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단독 저자로 쓴 첫 여행 에세이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를 낸 지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당시 30번도 넘게 교정한 글을 지금 읽으면 몇몇 문장이 낯설다. 내 생각과 취향, 성격은 끊임없이 바뀌고 기억도 수정되지만,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때문이다(중쇄를 찍지 못하면 수정도 어렵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원고를 쓰는 손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집필 활동이 주변 사람에게 알려지는 껄끄러움도 만만치 않다. 직장 동료가 내 작가 활동을 알게 되는 민망한 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지인이나 가족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감정도 낱낱이 펼쳐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콜센터에서 다니며 차별적인 발언에 종종 시달렸다는 사실도, 코로나 시대의 단절감과 업무 스트레스가 겹쳐 때로는 죽고 싶었다는 사실도,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은 모르셨으면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감추고 싶은 부분을 도려내어 가족이나 지인 판을 따로 출간하지 않는 한, 내 감정의 밑바닥을 영영 숨길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내가 가장 동경하는 작가는 필명으로 베스트셀러를 쓰고, 주변 사람에게 아무도 자신이 썼음을 알리지 않으며, 매체 인터뷰나 촬영에도 응하지 않는 이들이다. 하지만, 은둔형 작가로 활동하려면 뛰어난 재능이 전제 조건이다. 아쉽게도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호기롭게 첫 책을 실명으로 냈으며(흔한 이름이라 가명이나 다름없긴 하다만), 조만간 프로필 사진을 찍어 광화문 교보문고에 전시해야 할 운명이다. 그리고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신상을 어느 정도 노출하고서라도 홍보 활동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2월 15일이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브런치에 등록 된 ‘작가’ 수만 5만 명. 그 모든 사람들이 수상자 발표 글을 확인하지는 않겠지만, 평소에 받지 않던 관심을 받을 게 뻔했다. 영광스러운 순간을 앞뒀다는 흥분과 ‘겨우 이런 글이 대상감이냐’라며 비난받는 상상이 뒤섞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공식 발표를 몇 시간 앞두고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으로 쓴 수상 소감은 일종의 방어막이자 안정제였다. ‘내 필력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으며, 단지 무엇이든 쓰다 보니 소재의 특수성 덕에 행운이 찾아왔을 뿐이다’라고 공표함으로써, 선수를 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물론, 솔직한 심경이기는 하다). 어쨌든 글을 쓰는 사이 파도 같던 불안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부정적 망상 탓에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상의 기쁨을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침 9시, 수상자 발표 공지가 올라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소감문을 발행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전체 수상작의 스크린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다.


예상보다도 훨씬 따뜻한 축하의 말들이 쏟아졌다. 브런치 공지글에도 수상자와 참여자를 향한 축하와 응원의 댓글이 줄을 이었고,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에서는 생일보다도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약간은 변명 삼아 올린 소감문에도 진심 어린 댓글이 달렸다. 브런치 글에는 라이크가 큰 폭으로 늘었다. 접속할 때마다 새 소식을 알리는 민트색 동그라미가 떴다. 조회수 그래프도 경이롭게 치솟았다.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다.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라고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80억 명에 가까운 주인공이 있고,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이라면 사실상 다들 조연인 셈이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만한 때가 온다. 내 인생에서는 그런 순간이 딱 두 번 있었다. 바로 결혼식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발표일.


살면서 거의 처음 받아보는 스포트라이트는, 전날 느낀 불안감이 민망해질 정도로 두터운 응원을 선물했다. 물론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라는 생각을 조용히 삼켜주신 분도 계시겠지만, 아직까지 수상에 따른 악플이나 비난은 받지 않았다. 부모님과 시부모님께 완성된 책을 보여드리는 일은 여전히 겁나지만, 남편이 나 대신 ‘글 써서 대기업(!)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라고 말씀드리자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여전히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작가가 부럽지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일에 조금 더 무던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 좋은 말이 가득하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무관심하므로. 앞으로 글을 쓰다 보면 때로는 불쾌한 일을 겪겠지만, 내 글쓰기를 멈추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12월 15일을 기점으로, 나는 자신을 가두던 얇은 막 하나를 뚫고 나온 기분이었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Ashton Mulli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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