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써지는 글을 쓰는 법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5

by 이예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면 출간 기회와 더불어 5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세금을 제하면 앞자리가 바뀌기는 해도, 어쨌든 무척 큰돈이다. 책 한 권에 작가가 1,000원의 인세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무려 5,000권을 판매해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직접 경험한 바로는 초판인 1,000~2,000권도 소진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써서 받은 경제적 보상 중 가장 큰 액수였다.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몇 개월 간 생계유지 활동을 멈춘 채 오로지 원고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24시간 중 9시간을 회사에 저당 잡힌 나는, 갑자기 늘어난 통장 잔고를 보며 입금의 기쁨만큼이나 큰 부담감에 짓눌렸다. 두 달 반 동안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내 글쓰기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브런치의 전폭적인 지지와 민음사라는 유명 출판사를 등에 업고도 책이 실패한다면, 내가 정말 형편없는 작가라는 뜻이겠지. 그렇게 되면 다시 책을 내기 어렵지 않을까?’


압박감과 조급함 탓에, 워드 프로세서의 빈 페이지만 켜면 머릿속까지 새하얗게 비워졌다. 출근 전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퇴근 후에는 긴 업무로 눈이 피곤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말에 마음을 잡고 책상 앞에 앉아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힘겹게 채워 넣은 검은 활자는 전부 못마땅하게만 느껴졌다.


지레 겁이 났다. 하지만, 결과물에 자신이 없다고 해서 상을 반납하거나 계약을 깨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시간 내에 초고를 써내야만 했다. 내 능력이 아닌, 출판사의 안목을 믿고 한 편 한 편을 조심스레 쌓아갔다. 글이 써지지 않는 순간마다, 다음과 같은 방법에 기댔다.


1. 처음부터 잘 쓰려고 애쓰지 않는다

‘한 술 밥에 배부르랴’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문장이나 글이 완성되리라는 기대를 버렸다.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까지 물 흐르듯 써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의 원고는 그렇게 작성되지 않았다. 문단 별로 쓰고 싶은 내용을 불완전한 문장으로라도 일단 휘갈긴(!) 뒤, 그것을 토대 삼아 살을 붙이고 구성을 매만졌다. 무엇이라도 쓴 뒤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점차 모양새가 갖춰졌다.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괜찮다. 나보다 어휘와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은 지천이지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유려한 글을 직조하기보다, 내 목소리로 고유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자부심을 갖기로 했다. 또한, 책의 판매량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한 뒤,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2. 작업 환경을 바꿔 본다

온종일 직장에서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퇴근 후 또다시 노트북을 켜면 뇌가 파업 모드에 들어가곤 했다. 그럴 때는 컴퓨터로 쓰던 원고를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 스마트폰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책상 앞에서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으면, 기분 전환을 위해 반신욕을 하면서 원고를 고치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서 쓰기도 했다. 그 마저도 한계에 다다르면 근처 카페로 향했다. 또,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는 작업물을 인쇄해서 읽어보았다. 신기하게도 스크린 너머로는 보이지 않던 수정 사항이 종이 위에서는 선명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작업 환경이나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환기되기에, 조금 더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3. 딴짓을 한다

글을 쓸 때는 의외로 딴짓도 도움이 된다. 아무리 고민해도 적당한 마무리 문장이 떠오르지 않거나, 산으로 간 서문을 본문과 이어 붙일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때, 운동화를 신고 공원으로 나갔다. 원고만 하염없이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 풍경을 보며 멍하니 걷다 보면, 몇 시간을 끙끙대도 풀리지 않은 글의 실마리가 자연스레 잡히곤 했다. 다른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뇌의 일부가 원고를 생각하는지, ‘여기엔 이 이야기를 추가해야지’ 라거나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불시에 떠올랐다. 이런 발상을 놓치지 않도록 메모장에 적어두고, 작업할 때 확인하며 수정하곤 했다.


4. 통조림이라는 치트키

통조림은 일본의 ‘칸즈메(缶詰)’에서 유래한 말로, 작가를 호텔처럼 제한된 공간에 가둔 채 글을 쓰게 하는 행위다. 마감이 임박한 작가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나처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상금의 대부분은 가계 경제의 구멍을 메우는 데 썼지만, 창작 지원을 위해 주는 돈이니, 집필 활동을 위한 약간의 사치는 허용하기로 했다.

1월에 한 번, 그리고 2월에 한 번. 연휴를 이용해 2박 3일 동안 3성급 호텔에 머물며 원고에 집중했다. 호텔을 고르는 조건은 노트북을 올려놓을 책상과 등받이 의자, 그리고 조식의 유무였다. 책상과 의자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조식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 2박 3일 동안 문 밖에 Do Not Disturb 카드를 걸어둔 채 방에 콕 박혀 원고만 썼다. 가사 노동을 일체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원고에 투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숙박비를 자비로 부담하니,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집중력이 올라갔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목표한 분량을 쓰지 못하면, 근처 카페에서 몇 시간을 더 머물렀다. 초고의 3분의 1은 이 통조림을 통해 완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센터의 언어(가제)>를 쓰면서, 나는 ‘원고는 마감이 쓴다’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공저자로 책을 내거나 매거진에 여행 칼럼을 기고할 때는 한 편당 2~3주라는 넉넉한 기한이 주어졌고, 첫 책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를 쓸 때는 가진 건 시간뿐인 백수였다. 직장생활을 하며 두 달 반 만에 책 한 권 분량의 초고를 완성하는 일이 처음에는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마감이 가까워지자 다 방법이 생겼다. 결국, 글은 내 안에 있었다. 그것을 꺼내기가 어려웠을 뿐.


초고를 마감한 3월 7일에는 원고를 전부 프린트해, 카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읽었다. 다섯 시간 동안 커피 4잔을 마시면서. 빨간펜으로 수정한 부분을 집에 와서 컴퓨터에 옮기고 나니, 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파일을 업로드한 뒤, 노트북을 닫았다. 수정본이 올 때까지, 당분간 자유였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Robbie Nob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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