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6
음식은 먹기 전이 가장 맛있고, 할 일은 시작하기 전이 가장 어렵다. 적어도 내게는 늘 그렇다. ‘불금’까지 벼르고 벼르다 주문한 치킨도, 퇴근길에 설레는 마음으로 산 허니버터 칩도, 막상 입에 넣어보면 상상 속에서 군침을 흘리며 그리던 맛에 미치지 못한다. 한편, 기한이 정해진 과제는 늘 손대기 전이 가장 커 보인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을까. 막상 해보면 별 일 아닌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해야 되는데'라고 되뇔 때는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며칠 전 완료한 1차 퇴고도 마찬가지였다. 민음사에 초고를 보낸 뒤 피드백이 올 때까지 약 열흘 간은 천국과도 같았다. 12월에 있었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발표 이후, 처음으로 원고를 생각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었다. 자유라고는 해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퇴근 후 원고를 들여다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을 마친 후 바로 노트북을 켜지 않고, 정성껏 요리를 만들거나 운동을 하고, 밀린 넷플릭스 콘텐츠를 볼 수 있으니, 마치 방학처럼 느껴진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피드백이 머릿속에서 흐릿해질 무렵, 편집부의 신규 이메일이 날아들었다. ‘수정 제안’이라는 글자가 추가된 원고 파일에는 편집자님의 정성스러운 메모가 가득했다. 초고란 무엇인가. ‘쓰레기’나 ‘걸레’ 등 다소 과격한 단어에 종종 빗대는 이 초고는, 말 그대로 초벌 원고다. 나는 초고를, ‘처음 완성한 원고’ 아닌 ‘처음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완성 직후의 결과물은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수준이기에. 삶의 증거이기도 한 쓰레기와 고마운 청소도구인 걸레에게 미안할 정도로. 오타와 비문은 물론, 횡설수설하는 문장과 이음새가 약한 문단도 지천이다. 맞춤법 검사도 실시하고, 시간을 두고 거듭 읽으면서 다듬어야 그나마 남에게 보일 만한 초고가 완성된다. 마음에 꽉 차지는 않아도.
예상은 했지만, 1차 퇴고의 스케일은 꽤나 방대했다. 목차의 순서가 바뀌고, 구성은 3부에서 4부로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추가 원고도 집필해야 했다. 기존 에세이에서 이미 여러 번 다룬 주제나 메시지가 약한 글은 통째로 삭제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보강을 요청받은 점은 감정 표현이었다. 글이 담담하고 차분하다는 평을 자주 받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딴에는 꽤 적나라하게 감정을 드러냈다고 생각할 때도 그런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중학교 때 잠깐 발을 담근 연극부 활동이 떠오른다. 내가 표현한다고 생각한 감정의 반의 반도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경험이. 그리고 과잉이다 싶을 만큼 필사적으로 소리와 표정, 몸짓을 보여야 관객이 몰입해 주었던 기억이. 글로든 연기로든,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닿게 하기란 참 어렵구나 싶다.
편집자님과 전화 미팅을 통해 수정 방향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1차 퇴고 마감일을 4월 5일로 정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작업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내 글이 마치 헤어진 지 몇 주 지난 옛 애인의 얼굴처럼 거북했다. 그래서 주말에 대책 없이 여행을 떠났다. 그런 나를 혼내기라도 하듯 여행 내내 비가 쏟아졌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풍경을 보는 순간에도 ‘어떻게 수정하지’라는 걱정이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여행을 마친 뒤 마음을 다잡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퇴고보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글을 출간하는 상황. 오랜만에 열어본 초고는 역시 뜻하지 않게 마주친 옛 애인처럼 익숙하지만 낯설었고, 그 덕분에 오타와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더욱 두드러졌다.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듬으며 요구 사항을 착실히 이행해 나갔다. 태산처럼 보이던 퇴고 작업이었지만, 한 걸음씩 오르다 보니 고지가 보였다. 마지막 고비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던 두 편의 글이었다.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한이 정해져 있으면 어떻게든 쓰는 법이었다. 마감일 전날까지도 몇 번인가 갈아엎기를 반복하며 겨우 완성하고 나니 4월 5일, 밤 10시였다.
글을 고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 시간이었다. 작업을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제출하기 전 몇 번 더 고칠 수 있었을까 싶어 후회스럽고,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원고의 질이 더 나았을까 싶어 아쉬웠다.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이것을 최선이라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2차 퇴고 때는, 수정본을 받자마자 작업을 시작하고, 더 일찍 일어나 더 늦게 잠들리라.
원고를 놓아주어야 할 초여름이 얼른 오기를 기대하다가도, 또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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