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교열은 즐거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7

by 이예은

그동안의 과정을 글자 수 기준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총 3만 자에 불과했던 브런치북에 6만 자를 더 해 9만 자가 넘는 초고를 완성했고, 그중 두 편의 글이 탈락하면서 다시 8만 자로 분량이 줄었다. 꼭 글자 수 때문만이 아니라 구성 상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했기에, 수정 원고에는 그동안 어디에도 하지 않았던, 처음 도쿄에 교환 학생을 왔을 때 예상치 못한 병에 걸린 이야기와 이미 <일본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에서 다룬 적 있지만, 당시 밝히지 않은 상황과 지금의 마음을 더한, 퇴사와 유학 이야기를 담았다. 추가 원고 외에도 보충 설명이 필요한 곳에 살을 붙이고 나니, 바라고 바라던 10만 자짜리 수정 원고가 탄생했다. 글자 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음을 알면서도, 이 숫자만큼은 이상하게 꼭 넘기고 싶었다.


완성된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는 내 마음의 최대 지분은 역시 후련함이었다. 그러나 새로 쓴 원고마저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없진 않았기에, 쿨하게 보내 주지는 못하고, 고작 몇 시간 뒤 한 번 더 수정해 ‘이 파일로 봐주세요’라며 질척이고 말았다. 특히 도쿄 교환학생 시절의 기억은 10년도 넘은 것이라, 아팠던 부위를 헷갈려 반대쪽으로 쓴 사실을 제출 후 발견했다. 평소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좌우를 반대로 말하기도 하고, 더운데 춥다고 하거나, 배부른데 배고프다고 하는 등 말실수가 잦은 나지만, 시간을 들여 작성한 글에서도 그런 실수를 할 줄이야. 초기에 발견해 바로잡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런 오류 외에도 마지막에 추가한 글은 기존 원고에 비해 충분히 다듬지 못했기에, 검토를 할수록 아쉬운 부분이 화수분처럼 쏟아졌다.


놀랍게도 편집자 선생님의 답신은 바로 다음 날 도착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이메일을 열었다. 그곳에는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만큼이나 기쁜 두 문장이 적혀 있었다.


수정해 주신 내용, 새로 써 주신 사례 모두 좋아요! 크게 수정하거나 덧붙일 내용 없어서 이 상태에서 다듬어 가면 좋을 듯해요.


기대와 불안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던 마음이 안정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제 형태가 잡혔으니, 세세한 무늬를 넣고 윤기를 더하는 과정만 남은 것이다. 희소식이 있은지 1주일쯤 뒤, 형형색색의 수정 표시와 메모를 덧입은 원고가 메일함에 들어왔다.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작문을 첨삭받는 기분이랄까. ‘편집자의 의견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솔직히 버릴 것이 없었다. 교정교열은 그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글쓰기의 대가 중에는 출판사에서 원고의 단 한 글자도 고치게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글쓰기 경력도 짧고, 제대로 작문을 배워보지 않은(심지어 중학교 이후로 우리나라 말로 수업도 받지 못한) 내게, 교정교열은 목말라 있던 배움의 시간이었다. 브런치북과 초고는 혼자 쓸지언정, 책은 혼자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마 혼자 독립출판을 했다면, 그 책은 내 브런치북이나 초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다.


원고에서 가장 잦은 변화는 불필요하게 길거나 장황한 문장을 간단명료하게 간추린 것이었다. ‘~하는 법이다’는 ‘한다’로,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같지 않다’로 바뀌었다. 지나치게 긴 문장은 두 개로 분리하며 가독성을 높이기도 했다. 또한, 문장을 마무리하는 ‘것이다’를 병적으로 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것’을 지양하기 위해 제대로 끝을 맺지 않거나 ‘~리라’로 마무리한 몇몇 문장이 본연의 ‘것이다’로 돌아와 있었으니. 나아가 별생각 없이 썼던 철 지난 표현도 점검할 수 있었다. ‘커리어우먼’은 ‘직장인 여성’으로 대체됐고, ‘그녀’는 ‘그’로 통일됐다. 원고가 점차 발전하고 있다는 기쁨에 고무된 나 역시, 개선하고 싶은 부분을 수정하고, 변명과 잡담을 오가는 메모를 첨부하곤 했다. 원고의 일부를 수정할 때는 자칫 그 부분에 사로잡혀 주변 문장과의 조화를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어, 고친 뒤에는 전체 글을 다시 여러 번 읽었다.


그렇게 수정을 거듭한 뒤 답장을 보냈다. 이번에는 조금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편집자 선생님의 도움으로 완성에 가까워지는 원고를 보는 일이 기쁜 만큼, 끝이 도래하고 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이런 기분을 맛봐야겠지. 다음 교정을 볼 PDF 파일을 기다리며, 나는 약간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고 생각이 날 때마다 멍하니 메일함을 새로고침 하며.


대표 이미지: Photo by Jess Bail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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