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8
나는 언제부터 내 얼굴을 찍지 않게 됐을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시절, 친구 J가 셀카 기능이 있는 휴대폰을 처음 학교에 가져온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전면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촬영할 수 있는 파격적인 신문물이었다. 한동안 쉬는 시간마다 반 아이들이 그에게 몰려가 휴대폰을 빌려 셀카를 찍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대열에 합세해, 자그마한 2G 폰으로 눈이 크고 턱선이 갸름하게 나오는 각도를 찾기 바빴다. 지금 생각하면 흔쾌히 휴대폰을 내어준 J는 예나 지금이나 참 아량이 넓은 아이다.
얼마 뒤, 비슷한 휴대폰을 구입한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휴대폰 하나를 수십 명이 돌려 쓰던 현상은 사라졌다. 그러나 셀카 놀이는 여전히 성행했다. 내가 웹카메라와 휴대폰, 첫 디지털카메라로 가장 자주, 그리고 정성껏 찍은 피사체는 내 얼굴이었고, 수백 장의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것의 종착지는 싸이월드를 비롯한 각종 SNS였다(지금도 인터넷의 바다 어딘가에 그 시절 찍은 사진이 표류하고 있다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던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면 사진을 스스럼없이 포스팅에 첨부하곤 했다. 스물아홉에는 20대의 마지막을 기록하겠다며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프로필 사진을 찍기도 했고(촬영 전날 교촌치킨을 먹는 패기까지 보이며), 그 사진을 생애 첫 북 토크 포스터에 넣었다(그때는 전업 작가를 꿈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흐르면서 점차 내 사진을 찍는 횟수가 줄고 프레임 속 내 얼굴 크기도 작아지더니, 급기야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내 인스타그램 사진의 최대 노출은 뒷모습이다.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외모가 아니어서이기도 하지만, 작가이기 전에 평범한 직장인이다 보니,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일이 부담스러워서다. 그리고 가능성은 낮겠지만, 공개적으로 올린 내 사진이 어떻게 악용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래서 원고에 대한 부담이 사라진 뒤 남은 가장 큰 시련은 프로필 사진 촬영이었다. 브런치에서는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 출간되고 나면, 일정 기간 공간을 대여해 전시를 열어준다. 책뿐 아니라 작가의 사진도 함께. 책 홍보에 큰 도움이 되는 고마운 행사이므로,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 공개적인 장소에 자신의 사진이 전시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 사실 탓에 수상을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프로필 사진 촬영 전에도 작은 위기가 있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발표 후, 브런치팀 직원과 수상 작가들을 영상으로 만나 인사하는 자리였다. 회의 도중 쌍엄지를 쳐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작가 중에는 나만 엄지로 얼굴을 가려서 주최하신 분께서 ‘작가님은 얼굴 가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어쩔 수 없이 눈까지 올렸던 손을 코 밑으로 스르르 내렸는데, 대신 의자를 뒤로 빼어 카메라에서 멀어지는 기지를 발휘했다.
고작 브런치 SNS에 올릴 사진 촬영도 이토록 부담스러운데, 대형 서점에 걸릴 전신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한다니. 심지어 일본에 사는 나는 촬영을 위해 귀국할 수 없어, 현지에서 사비를 들여 찍어야 했다. 그 탓에 ‘다른 사람을 내세워 찍어 보내도 모르지 않을까’라는 위험한 발상까지 해봤다.
비용도 부담이었다. 20-30장 정도는 몇만 원에 찍어주는 곳도 있었지만, 증명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요금에 인쇄와 보정, 데이터가 일반적으로 포함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보정과 데이터 값을 대부분 따로 받는다. 찾아보니 프로필 사진의 경우 상반신이냐 전신이냐, 혹은 둘 다냐에 따라서도 요금이 나뉘었고, 원본 데이터를 전부 제공하는 상품은 더 비싼 편이었다. 비용이 저렴한 셀프 스튜디오도 고려했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겨 재촬영을 하게 되면 난감하니, 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오산이었다).
다행히 몇 주간 틈 날 때마다 검색한 덕분에 집에서는 멀지만, 반값 할인 중인 스튜디오를 예약할 수 있었다. 인쇄용이고 주최 측에서 사진을 선택하기에 사이즈를 줄이지 않은 모든 원본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전달했다. 예전 전시 샘플을 보여드리며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부탁드렸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옆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런 사진들. 그런데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 중간중간에 귀여운 포즈(예를 들면, 뒷짐 지고 뒤돌아 섰다가 ‘네?’하고 돌아보기라던가)를 요구하셔서 진땀을 뺐다. 게다가 긴장한 나머지 사진작가님의 일본어가 뇌에 들어오지 않아 무척이나 삐그덕거렸다. 그분의 답답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웬만해서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래도 무자비할 정도로 고화소 카메라에 담긴 나를 보는 건, 자기 객관화에 꽤 도움이 됐다. 그 안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딱 1.2배 거대한, 특히 하관이 잘 발달한 내가 있었다(말년운이 좋으려나). 터틀넥을 입으니 목주름은 감춰졌지만, 호빵처럼 복스러운 볼이 더욱 두드러졌다. 예상한 바지만, 진실은 언제나 뼈아프게 다가오는 법. 게다가 내 의사에 반하는 깜찍한 포즈나 학습지 광고 같은 동작도 있어 ‘이 사진이 서점에 걸리면 나는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싶은 사진은 (담당자님께서 그러지 말라고 하셨으나) 한 번 거른 뒤 제출했다.
‘전시 기간에는 꼭 서울 가야겠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물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방문한다 하더라도 전시 공간에 인쇄된 내 사진은 멀찍이 바라보는 데에 그치겠지만.
대표 이미지: Photo by Pawel Czerwinsk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