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그 후 9
출간일이 가까워질수록 원고가 내게 돌아오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긴 공백 후에 받은 편집자의 이메일에는 더 이상 워드가 아닌, 조판을 완료해 책 속지의 모양새를 갖춘 PDF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내 원고는 편집팀뿐 아니라 교정교열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등을 전전하며 세상에 나올 준비를 차근차근 밟고 있었다. 한 출판사에 소속된, 전문 분야가 다른 직원 분들이 내 문장을 다듬고, 오탈자를 덜어 내고, 지면에 글자를 배치하고, 디자인을 입히고, 추천사를 부탁하고, 신간 마케팅 및 홍보 계획을 세운다니. 무척 황송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부족한 아이를 남의 손에 넘긴 듯한 죄책감과 약간의 무료함도 느꼈다.
작업량이 줄자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날이 늘었다. 퇴근 후에는 밀린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자주 7월 달력을 보았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일정이 지난해와 비슷하다면 빠르면 6월 말, 늦어도 7월 초에는 책이 세상에 나올 터였다. 이미 시작된 더위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내 노트북에 워드나 PDF 파일로만 존재하던 글이 물리적 형태와 색, 무늬를 입고 서점에 입고되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 책이 얼굴 모를 독자님의 손에 들려 내가 갈 수 없는 장소들을 여행한다 생각하면, 기대감에 마음이 뜨거워지다가도 막연한 불안과 걱정이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원고는 검토하는 날의 기분에 따라 자랑스럽다가 초라해 보이기를 반복했으므로.
같은 시기, 함께 상을 수상한 작가님 중에는 이미 차기작 집필을 시작하신 분도 꽤 계셨다. 그러나 나는 여러 글 회로를 동시에 돌리다간 과부하에 걸릴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콜센터의 언어(가제)>가 출간되어 리뷰와 판매량에 일희일비하다 감정의 폭이 잦아드는 시기를 몸소 겪기 전까지, 다음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5월 말, 편집자의 손글씨가 더해진 교정본이 도착했다. 주어진 검토 기간은 단 며칠. 문장 부호와 단어를 제외하면 큰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어쩌면 원고를 다듬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느 때보다 꼼꼼히 확인했다. 따옴표 하나하나뿐 아니라 단어 변경에도 신중을 기했다. ‘팽창(부풀어서 부피가 커짐)’과 ‘확장(범위, 규모, 세력 따위를 늘려서 넓힘),’ ‘개발(지식이나 재능 따위를 발달하게 함)’과 ‘계발(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강박(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낌)’과 ‘압박(강한 힘으로 내리누름)’ 등 비슷한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며 내 의도와 맥락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하는 쪽을 고르려 노력했다. 이제는 글의 순서도 본문도 외울 지경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말끔한 모습으로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아무리 노력한 들, 교정과 교열, 윤문을 통해 내 글의 퀄리티가 다른 차원으로 수직 상승하는 일은 없을 테다. 몇 달을 매달려도 발견하지 못했던 오탈자가 출간 직후 쏟아져 창피를 당할지도 모른다. 이번 책을 낸 후로도 계속해서 글을 쓸 테니,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문장을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유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책의 불변성은 그토록 무서운 존재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중에 내 문장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올지언정 지금 나의 노력과 열심은 부끄럽지 않도록 힘을 쏟는 것뿐.
주어진 검토 기간이 끝나고 공은 다시 출판사에게로 넘어갔다. 표지와 본문 디자인도 곧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이제는 정말 끝이 시작된 기분이다.
대표 이미지: Photo by Steven Lelha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