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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나에게 피임을 하냐고 물었다

by 이예은

부모로부터 성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라 함은 결혼식을 올린 지 1년 반쯤 지나, 출판 행사로 한국을 방문한 지난 2월. '피임하면 안 된다'라는 다소 노골적인 발언 이후, 아빠는 '남편에게 사랑받을 때 임신을 해야 한다'라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여기서 '사랑'의 뜻은 '활발한 성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졸업에서 취업으로, 그리고 결혼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삶의 공식은 여전히 건재하다. 적어도 부모님 세대에서는. 도통 결혼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딸이 만 스물일곱에 시집을 갔으니, 아빠는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겠거니 기대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게 결혼은 애인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 표현이자 양가의 축복 아래 함께 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을 뿐, 임신을 위한 준비 과정은 아니었다.


사실, 남편과 나는 아직 자녀 계획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남편은 부모가 된 친구나 지인을 보며, 육아의 고단함을 일찍이 학습한 듯했다. 유모차와 '기저귀 백'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이와 외출하는 부모를 보면, 부럽다기보다는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단다.


오히려 '엄마가 되는 일'에 대한 대책 없는 낭만을 품은 쪽은 나다. 아이 이름은 진작에 정해 뒀고(여자 버전, 남자 버전 모두), 현지 학교를 보낼지 국제 학교를 보낼지도 가끔 고민해 본다. 한 술 더 떠 남편과 내 얼굴을 조합해 아이의 외모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생명을 기르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따르겠지만, 오히려 삶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이유에서 남편에게 '한 명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어보면, 또 형제자매는 꼭 있어야 한다며 '낳을 거면 둘!'을 외친다. 이렇게 안 맞을 수가.


결국 여러 번의 대화 끝에 '어차피 당장 낳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니, 몇 년 후에 생각해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임의로 정한 기준은 세계 보건기구(WHO)에서 노산으로 분류하는 나이인 만 서른다섯(물론 그 이후의 출산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임신 연령이 아니라 출산 연령이니, 앞으로 3~4년 정도의 숙려 기간이 남은 셈이다. 그 동안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가 간절해진다면, 모든 리스크를 떠안고 부모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다만, 원할 때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부부의 성향 상, 의학의 힘을 빌리기 보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둔 아이 이름은, 강아지에게 붙여 줘야지.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설명에 굴복할 아빠가 아니다. 아마 친인척의 관심을 등에 업고, 만날 때마다 손주 이야기를 꺼내시겠지. 성교육 한 번 한 적 없는 아빠가 딸의 피임 여부를 직접 물어보셨으니, 다음에는 과연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다.


그래도 덕분에 부모가 된다면 도움이 될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부모로서 자식의 임신 계획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고, 나아가 희망 사항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표현의 자유는 존중 받아 마땅하므로), 강요는 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평소 자식과 성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스스럼없는 관계가 아니라면, 단어 선정에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까? / Photo by Janko Ferlič - @specialdadd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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