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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Sep 21. 2019

작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단행본 출판과 프리랜서 선언 그 후


서른 중반이 넘으면 정직원으로 취업하기 어려우니까, 얼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누군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며칠간 마음을 좀먹었다. 집에서 번역을 하고, 글을 쓴다고 하면 '얼른 제대로 된 일을 찾아야 할 텐데'라는 반응과 간혹 맞닥뜨리게 된다.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 내 삶의 방식을 인정받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 한 마디에 생채기가 나는 것은 나조차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 작가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세어보니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쓴 지 오늘이 꼭 445일째다.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되기 이전인 지난여름, 도쿄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카마쓰라는 일본 소도시에서 뜬금없이 한 달을 지냈고, 그곳에서 쓴 글 21편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여행 코스를 덧붙여 독립 출판사를 통해 한 권의 책을 냈다. 단언컨대 살면서 했던 작업 중에 가장 가슴 설레고 보람찬 경험이었지만, 경제적인 보상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는 매우 보편적인 일이다.

2019년 1월 출간한 첫 단행본 표지 @세나북스



냉혹한 출판의 세계

소수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1권이 팔릴 때마다 작가는 1,000원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물론 계약서에 일정 판매 부수를 넘어야만 인세를 지급하는 '공제 부수'가 있다면 금액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작품 장르나 작가의 인지도에 다르겠지만, 판매 가격의 5~10%라고 보면 된다.


쉽게 계산해서, 1,000부가 팔리면 100만 원, 1만 부가 팔리면 1,000만 원을 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한해 6만 종 이상 쏟아지는 출판물 중 1만 부 이상 팔리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 문학 작품의 경우 대부분 초판인 2,000~3,000권도 소진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초보 작가의 경우, 책 1권으로 직장인 한 달 월급만 벌어도 성공한 축에 든다고 볼 수 있다.


Photo by Jessica Ruscello on Unsplash


반면에 책 1권의 책에 들어가는 최소 글자 수는 보통 10만 자 내외. 물론 장르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이는 원고지 약 500매, MS 워드 기본값으로 약 60페이지, 한글 문서로 약 55페이지에 해당한다. 나는 이 정도 분량의 초고를 완성하는 데만 약 3개월 이상이 걸렸으며, 기획과 취재, 편집, 교정까지 포함한 기간은 총 8개월에 달한다. 운 좋게 초판을 다 소진해 인세로 200~300만원를 받는다 하더라도, 최저시급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작가로 먹고사는 이유

출판을 계기로 용기를 얻어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실으며 느낀 바는 '작가'라는 직업의 범위는 무척이나 넓고, 수익 창출의 기회도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회사나 매체에 소속되어 글을 쓴다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업종의 프리랜서처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 출판한 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문화센터나 대학교에 강연을 나가거나, 잡지에 기고해 원고료를 받거나, 혹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스스로 책을 만들고 판매할 수도 있다. 그리고 출판과 관련이 없더라도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글을 쓰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주 5일 8시간 이상 직장에 다니며,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전업작가 못지않은 양의 책을 내는 철인 같은 작가도 있다. 나 역시 생계유지를 위해 일본어와 영어 번역을 하고 있으며, 관심 있는 분야에 아르바이트나 사원 공고가 뜨면 원서를 내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어떤 형태의 작가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자리에 있든 삶의 지향점을 '작가'에 두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면 작가가 아닐까. 역으로 말하면, 어쩌다 책을 한 권 냈다고 해도 현실에 떠밀려 작가로 성장하고 싶은 의지나 노력이 소멸되었다면, 더 이상 작가라고 불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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