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2019 서울 핫플레이스 결산
해외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고국이 설레는 여행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만큼 음식이 내 입맛에 잘 맞고, 말이 통하고, 반가운 사람이 많은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 리 없다. 게다가 변화가 빨라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교통과 통신까지 편리하니 이보다 이상적인 여행지가 또 어디 있으랴.
2019년은 유독 서울을 자주 방문한 해였다. 여름에는 친오빠의 상견례, 가을에는 아이돌 콘서트와 출장, 그리고 겨울에 있는 오빠의 결혼식까지 총 5번에 달할 예정이다. 물론 귀성에는 대부분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자유로운 여행과는 거리가 멀지만, 틈이 날 때마다 정해진 일정에서 벗어나 사리사욕을 채웠다. 그리고 여기,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발견한 서울의 보석 같은 명소를 모았다.
2019년 5월 정식으로 개원한 서울 식물원은 내 위시리스트에 일치감치 올라와 있었다. ‘서울 마지막 신도시’라고 불리는 강서구 마곡지구에 자리하며, 유료 구역인 주제원은 온실과 야외 정원, 그리고 마곡 문화원(구 배수펌프장)으로 구성된다. 하이라이트인 온실은 물론 근사했지만, 한여름에 들어가니 사우나와 다름없어 싱그러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대신 야외 정원이 생각보다 넓고, 형형색색의 꽃이 심겨 있어 만족스러운 산책을 했다. 겨울이었다면 반대였을 테지. 역시 두 구역 모두 온전히 만끽하려면, 봄가을이 제격이겠다.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 동로 161 서울식물원 식물문화센터(마곡나루 역 3,4번 출구 연결)
이용시간: 09:30~18:00(3월~10월), 09:30~17:00(11월~2월)
입장료: 어른 5,000원
홈페이지: http://botanicpark.seoul.go.kr/
주제원 관람은 2~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이왕 서울 식물원을 방문한다면 가성비 좋은 스테이케이션은 어떨까.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는 가격에 비해 객실이 넓고 쾌적하며, 인테리어부터 서비스까지 군더더기 없다. 게다가 객실 방향에 따라 서울 식물원을 조망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푸릇푸릇함 정원 일부가 내려다보여 휴양 온 느낌이 든다. 단, 운이 나쁘다면 일명 ‘공사장 뷰’에 당첨될 수 있으니 주의.
주소: 강서구 마곡중앙 12로 10(마곡나루 역 2번 출구)
홈페이지: https://www.marriott.co.kr/hotels/travel/selcs-courtyard-seoul-botanic-park/
한국의 카페 문화와 다양성, 그리고 커피의 맛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으리라 자부한다. 그리고 앤트러사이트 서교는 나의 한국 ‘카페 부심’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망원동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이곳은 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손님을 마중하는 자갈 정원은 교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레산스이 정원(흰모래와 돌을 배치해 바다와 산을 표현한 정원 양식)보다 조금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 3층짜리 건물 외관도 카페보다는 갤러리에 가까워 보인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창밖이 보이도록 설계된 점은 섬세하고, 쓸모없는 소품은 전부 배제한 간결함은 압도적이기까지 하다.
평일 낮에 방문해서인지 사람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오로지 아름다운 공간과 나, 그리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가까이에 산다면, 삶의 풍요를 위해 기꺼이 매일 이곳에서 커피값을 낼 의향이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12길 11
이용 시간: 9:00~22:00
홈페이지: http://anthracitecoffee.com/seogyo
이름에 '인사동'이 들어간 호텔을 예약했는데, 찾아가 보니 익선동 앞이었다. 인사동도 가까웠지만, 둘 중 하나만 가라면 역시 '힙'한 익선동이다. 익선동 한옥 거리는 30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좁은 골목을 미로 찾기 하듯 탐방하며 곳곳에 '취향저격'하는 스폿을 찾는 재미가 있다. 오래되고 낡은 한옥은 '뉴트로' 감성을 만나 트렌디한 장소로 탈바꿈했으며, 덕분에 모든 거리가 영화 세트장처럼 포토제닉하다. 하지만 돌아보는 내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소: 서울 종로구 익선동(종로3가역 4번 출구)
엇비슷한 건물 사이에 우뚝 솟아오른 롯데월드타워를 보고 있노라면, 소인국에 온 걸리버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독보적인 높이만큼이나 전망 또한 차원이 다른데, 나는 밤과 낮에 각각 한 번씩 전망대에 올랐다. 칡흑 같은 어둠 속 555m 높이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마치 검은 바다 밑에서 반짝이는 희미한 모래 같았다. 물론 그 또한 비경이라면 비경이겠지만, 나는 다소 적나라하더라도 하늘과 물, 풀을 식별할 수 있는 낮이 더 좋았다. 세 번째 방문에는 낮과 밤 사이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이용 시간: 10:00 ~ 22:00(일~목), 10:00 ~ 23:00(금~토)
입장료: 어른 27,000원
홈페이지: https://seoulsky.lotteworld.com/ko/main/index.do
몇 년 전부터 가을만 되면 지인들의 인스타그램을 물들이던 보송보송한 분홍빛 솜털의 정체가 궁금했다. 핑크 뮬리라고 불리는 여러해살이풀은 원래 미국 서부나 중부 지역의 따뜻한 평야에서 자생한다. 2014년, 제주도 휴애리 자연생태공원에서 대량 식재하면서 국내 SNS에 인기를 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전국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비록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서울에 있는 하늘 공원에도 핑크 뮬리를 볼 수 있다. 포근한 인디핑크 색상과 구름 같은 질감을 직접 느껴보니,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겼는지 알 것 같았다. 핑크 뮬리 주변에서는 삼각대와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이 많았다.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려는 모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핑크 뮬리 옆에는 코키아(댑싸리)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었고, 군데군데 코스모스도 곱게 피어 있었다. 하지만 하늘공원에서 가장 지분이 많은 식물은 억새인 듯했다.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억새풀이 파도처럼 드넓게 일렁이는 풍경은 가을의 낭만 그 자체였다.
주소: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95(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에서 도보 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