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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Dec 12. 2020

오늘도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나에게

나는 우울하지 않기로 했다

내 우울은 지성의 부산물이야. 너는 이해 못해.

정세랑 소설 <옥상에서 만나요> 중에서



삶의 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요소를 꼽으라면, 기분이라고 대답하겠다. 돈도, 집도, 건강도, 인간 관계도, 심지어 꿈도 아닌, 깃털처럼 가볍고 철없이 느껴지는 그 단어, 기분.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평점심을 보유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돈과 집, 건강, 인간관계, 꿈 등 인생의 소중한 가치가 모두 무너져도 금세 다친 마음을 회복할 능력이 있다면, 삶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기분' 좋은 도전에 불과할 뿐.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비극은,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인생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크고 작은 불행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상처 받는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마음은, 어쩌면 통증을 감지하지 못하는 육체만큼이나 위험할 테니. 그러나 한번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을 때 그것을 방치할지 극복할지는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몸에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자연스럽게 나을 때까지 기다릴지, 정성스레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일지, 혹은 바로 병원으로 달려갈지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 이유는, 모순되게도 요즘 우울감을 자주 느껴서다. 타고난 성향이 결코 낙천적이지 않고, 작은 트러블을 두고도 유난스러울 만큼 고민하는 내게 코로나 19와 일본에서의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한국에 가지 못한 지 1년 동안,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식과 한 번의 명절을 흘려보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수술, 그리고 친할머니의 암 판정까지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이들의 곁을 지키지 못한 중요한 순간이 하나둘 쌓일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수십 통의 전화와 이메일을 처리해야 하는 근무 시간은 특히 가혹하게 느껴졌다. 출근을 앞두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이 그대로 사라지기를 바랐고, 간혹 맞닥뜨리는 상식 이하의 무례함에는 필요 이상으로 휘청거렸다. 출간을 목표로 집필 중인 원고도 한 달에 한 편을 겨우 쓸 정도로 지지부진했으며, 그 마저도 '어렵게 출간한다고 해서 누가 읽어줄까, ' '어쩌다 책 몇 권 출간한 상담원으로 커리어가 끝나는 건 아닐까'라는 회의를 낳았다. 괴물 같은 일상과 기대되지 않는 미래. 이보다 더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더 위험한 복병은, 이토록 음습한 기분이 가진 중독성이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때론 치명적이게 아름답다.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이라면 비극으로 끝나는 그 많은 소설과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줄 리 없으니. 게다가 일상 능력이 마비된 자아가 까마득한 나락으로  침잠하는 사이, 그동안 잠재돼 있던 감성이나 발상이 부상하는 경우가 있다. 한때 광기와 자학이 창작의 근원으로 여겨진 연유도 아마 여기에 있으리라. 하지만 감정의 밑바닥에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정상적인 생활 패턴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결국, 더 큰 자기혐오와 죄책감에 괴로워하리란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나는 우울감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절박하게 몸부림쳤다. 감정의 그래프는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다가도, 별 것 아닌 사건을 계기로 급락하며 좌절감을 안기곤 했다. 그래도 몇 번의 굴곡을 넘기는 사이, 그 폭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부정적인 기분을 일찍 감지하고 평정심을 되찾는 요령이 조금은 생긴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응급 처치는 몸을 돌보는 일이었다. 육체와 정신은 분리된 기관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결합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마음도 병들기 쉽다. 생각해 보면, 주변 건물과 공사 소음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온종일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정신이 온전한 게 이상할 정도였다. 평일에는 잠깐이라도 현관 밖에 나가 햇살과 바람을 쐬었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산책을 갔다. 계절이 바뀐 뒤 처음으로 집 근처 공원을 찾았을 때, 바람에 떨어지는 샛노란 은행잎과 막 피기 시작한 붉은 동백꽃이 얼마나 경이롭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또,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숙면을 위해 근무일 전날에는 각방을 쓰기로 했다. 덕분에 중간에 잠에서 깨는 빈도가 하루 4~5번에서 1~2번으로 줄었고, 한결 가뿐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코 고는 배우자를 둔 사람은 모두 공감하리라). 배달 음식도 줄였다. 간단한 요리라도 직접  만드는 편이 건강에 좋을 테니. 한인 마트에서 매번 사 먹던 김치와 깍두기도 손수 담그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와 먹을 음식을 위해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동안 활력이 솟았고, 완성한 뒤에는 제법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두 번째는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변화였다. 지금 나는 두 가지 노동을 한다. 단순하게 나누자면 생계를 위한 직장 생활과 자아실현을 위한 창작 활동이다. 전자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본어나 영어로 일반 고객과 기업 문의에 대응하는 일이고, 후자는 쓰고 싶은 주제에 관해 스스로 기획에서부터 자료 수집과, 취재, 집필까지 완료하는 일이다. 스트레스 더 많이 받는 쪽은 물론 고객 센터 일이다. ‘내가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웠더라면, 생업으로써의 글쓰기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어서다. 하지만 내게 직장 생활과 글쓰기는 사실 상호보완적인 존재다. 직장이 있기에 타국에 살면서도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고, 안정적인 수입 덕분에 매체의 지원 없이도 자유롭게 취재활동을 펼칠 수 있으니. 게다가 원고가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출근할 힘도 솟아난다.


감정 노동 특유의 고단함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 7시간가량, 얼굴도 모른 채 대화하는 수십 명의 사람 중에는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 선량한 시민이 훨씬 많다. 일본인이 아니라면 말을 섞지 않겠다거나, 무리한 요구와 함께 고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에 한두 명 있을까 말 까다. 그러니 극소수의 악의를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일은, 아무 조건 없이 내게로 온 다수의 선의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어떤 목소리를 내 안에 받아들일지는 오직 나만이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수락하지 않은 공격과 비난은, 고스란히 그 주인에게 돌아가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원하는 미래를 끊임없이 상상하는 것이다. 아무리 하루가 고되어도 더 나은 미래가 오리란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내게 삶에 애착을 부여하는 행위는 결국 글이다. 평생 꾸준히 책을 쓰고, 전작보다 발전한 신작을 선보이며, 검소하지만 건강한 삶을 사는 꿈. 단기적으로는 내년에 지금 준비 중인 에세이를 출간해 나응 응원해주신 분들께 선보이고 싶고, 40대가 되기 전에 지금껏 살았던 모든 나라를 방문해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경험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전업작가가 되어 오로지 글로만 삶을 지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 계획에 걸맞은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는다.




우울이 지성의 부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이 헤아릴 수 없는 개인적인 영역임에는 동의한다. 혼자 해결하는 것이 결코 능사는 아니지만, 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온전히 돌볼 수 없는 장소가 바로 내 마음이다. 어설프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이런 방법으로 한 고비 한 고비 넘기고 있음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삶의 많은 즐거움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 시기를 모두가 초연하게 견뎌내기를, 그리하여 소원하던 내일을 기필코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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