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다이어트를 통한 식습관 개선기
일본어에 ‘시아와세부토리(幸せ太り)’라는 단어가 있다. ‘행복에서 살찌는 일'을 뜻하는 단어로, 생활이 편하고 여유로워져서 보기 좋게 살이 붙은 경우에 쓴다. 아마 예상했겠지만, 주로 결혼 후 눈에 띄게 토실토실해진 커플이 주 타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체중이 불어서 즐거운 사람보다는 괴로운 사람이 더 많으니, 어쩌면 행복의 부작용, 혹은 저주 인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이 ‘시아와세부토리’를 제대로 맞은 경우다. 결혼도 아닌, 연애 시절부터 그랬다. 170cm 키에 50kg대 초반을 유지하던 나는 남편을 알게 된 지 반년만에 앞자리 수가 바뀌었고, 원래부터 표준 체중을 웃돌았던 남편은 한때 세 자릿수 몸무게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서는 둘 다 보는 눈이 무서웠는지 5kg 이상 감량했지만, 그로부터 어느덧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50kg대 후반, 남편은 90kg대 초반에 정착한 상태다.
대체 왜 결혼하며 살이 찌는 걸까. 신혼부부가 통통 해지는 현상은 만국 공통인지, 서구권에서는 진작 연구도 활발히 진행됐다. 2013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감과 체질량지수(BMI)가 비례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또 호주의 어느 대학에서는 커플들은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외모를 가꿀 필요가 없으므로, 지방이나 설탕 함량이 높은 음식에 관대해진다고 학술지 플로스원(2018년 2월호)에서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연애 시장에서 잠정적으로 은퇴한 우리는 더 이상 소개팅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고, 3년 가까이 함께 살며 이미 볼꼴 못볼꼴 다 본 터라 외모에 대한 환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남편의, 아내의 외모가 조금 볼품없어졌다고 해서, 금세 애정이 식거나 떠나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신뢰도 굳건하다.
그러나 몸무게가 늘어난 직접적인 원인은 역시 식습관의 변화다. 결혼 전 자취 생활을 하던 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수프나 샐러드로 한 끼를 때우거나 그마저도 거르기 일쑤였다. 과자나 케이크는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나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한 뒤, 적어도 저녁 한 끼는 푸짐하게 만들어 먹기 시작했으며, 돈이 아까워 잘 주문하지 않던 배달 음식도 척척 시키게 됐다. 게다가 매일같이 야식으로 과자 두 봉지와 말린 오징어, 어육 소시지를 뜯는 남편과 살다 보니 덩달아 간식 섭취량도 늘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19로 인생의 가장 큰 낙이었던 여행은 물론, 외출과 외식에도 제동이 걸리자 식욕이 폭발했다. 겨우내 일본의 허니버터칩인 '시아와세버터'를 달고 살았고, 재택근무가 끝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맥주나 와인 한 잔에 칼로리 높은 안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당연히 체중은 내려갈 줄 몰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반길 사람이 누가 있으랴.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 사진을 보며 '이때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며 한탄하기 일쑤였고, 신경을 써서 꾸민 날에도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2021년이 밝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에 직장 동료에게 추천받은 GM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제네럴 모터스에서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개발한 1주일 식단이라고 하는데, 날짜에 따라 과일, 야채, 고기 등 종류의 제한은 있지만, 양의 제한은 거의 없다. 후기마다 구체적인 방법이 달라, 해외 사이트(https://www.gmdietworks.com/)를 기준으로 삼았다. 가이드라인을 완벽하게 지키기보다는 물을 많이 마시고 감미료와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며, 7일간 금주한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었다. 운동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평일에는 스트레칭과 퇴근 후 밤 산책을 30분 즐겼고, 주말에는 1시간 이상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걸었다.
단, 바나나는 제외다. 그럼, '아보카도는 먹어도 될까'라고 생각했지만, 홈페이지에서 추천하는 과일 리스트인 멜론, 딸기, 수박, 오렌지, 사과를 보고 포기했다. 집 근처 마트에서 팔고 있었던 사과와 딸기, 귤, 포도를 한 팩씩 사서 배고플 때마다 먹었다.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힘들지 않았다.
감자는 아침에만 권장한다. 오전에 건강 검진이 있었기에 감자를 먹지 못했고, 약 20시간의 공복 후 집에 돌아와 토마토를 갈아 마셨다. 냉장고에 있는 버섯과 마늘, 양파, 파 등을 있는 대로 꺼내 구워 먹었다. 기름 없이 구워도 맛있었지만, 프라이팬 거뭇거뭇해져서 저녁에는 올리브 오일을 조금 사용했다. 간을 하지 않아도 재료 본연의 풍미가 느껴졌다.
바나나와 감자를 제외한 과일과 채소를 마음껏 먹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확실히 몸이 가뿐하고 아랫배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3일 차부터는 신기하게도 허기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아 밥을 의식적으로 챙겨 먹어야 할 지경이었다.
바나나와 우유만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일반 우유를 마지면 속이 불편해, 오트 밀크를 구입해 바나나를 3-4개를 갈아 마셨다. 또, 바나나 셰이크로 하루를 버티기 힘들 것 같아 GM 다이어트의 대표적인 레시피인 '원더 수프'를 만들었다. 버섯과 양배추, 양파를 올리브 오일에 볶은 뒤 셀러리, 토마토를 넣고 1시간 이상 끓인 수프다. 채소 고유의 새콤 달콤한 맛이 진하게 우러나와 금방 포만감이 느껴졌다.
눕거나 앉아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도는 기립성 어지럼증을 겪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고기를 섭취하니 자연스레 해결됐다. 고기는 소고기뿐 아니라 닭고기나 생선도 허용되며, 육식을 하지 않는다면 치즈로 대체할 수 있다(곱창이나 껍데기는 아마 안 되겠지?). 점심에는 소고기 200g을, 저녁에는 연어 스테이크 1조각을 먹었는데, 소금 간이 된 연어를 샀더니 불쾌할 정도로 짜서 거의 남겼다.
감자를 제외한 모든 야채를 섭취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늘어났다. 점심에는 소고기 약 100g을 사서 팽이버섯 말이를 만들었고, 저녁에는 닭고기 허벅지살 230kg을 사서 방울 양배추와 마늘과 함께 구웠다. 닭고기 스테이크에는 버터 1조각을 가미했다. 다이어트 식단처럼 느껴지지 않는데도 살이 빠지고 있어 신기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 사과와 토마토를 갈아 마셨고, 현미밥 햇반을 하나 사서 점심과 저녁에 걸쳐 반씩 나눠 먹었다. 반찬으로는 채소 볶음, 디저트로는 과일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현미밥의 단단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좋았고, 이렇게 단순한 구성으로 한 끼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이어트 기간 동안 감량한 몸무게는 2.4kg에 지나지 않았지만, 허리와 볼이 눈에 띄게 들어갔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음식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였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나는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스트레스 해소와 쾌락을 목적으로 무언가를 먹고 마셨다. 몸을 위해서가 아닌, 기분을 위한 음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기름과 양념이 들어가 있든 괘념치 않았다. 이왕 먹을 거, 맛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일주일간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자 입맛이 예민해졌고, 맛보다는 조리 과정이나 재료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영양소는 많지 않고, 열량만 높은 정크 푸드는 자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물론 먹는 즐거움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기에 가끔은 시럽이 든 라테도 먹고, 집에서 치킨을 튀기거나 삼겹살을 굽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김치와 밑반찬, 채소 볶음과 미소 된장국이 기본이다. 하루를 살아 내는 데 매끼 근사한 식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밥을 차리는 수고는 물론 식비도 줄었다.
우리나라는 '밥 먹었어?'가 인사일 정도로 식사를 중요시한다. 입이 짧은 사람보다는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을 복스럽게 여긴다. 요리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 심정도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세상에는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를 찾는 건강한 편식도 있고, 아무것도 안 가리도 다 먹다가는 비만이 되기 십상이다.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여도 집 앞으로 산해진미가 배달되는 풍요의 시대, 이제는 조금은 덜 먹고 현명하게 가려 먹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나처럼 행복해서 살이 쪘어도, 살이 쪄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