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요코하마 국제 종합경기장에서 한일 친선 축구 경기가 열렸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지만, 코로나 19 확산세 속 외출이 꺼려져 티켓팅을 망설이다 결국 거실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경기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씁쓸한 패배로 막을 내렸지만, 요코하마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와 한국어 함성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관중석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관람객이 카메라게 잡힐 때는 나처럼 일본에 사는 교민인가 싶어 눈길이 갔다. 양국을 쉽게 오갈 수 없게 된 지 1년이 넘은 지금,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그만큼 차곡차곡 쌓여왔기 때문이리라.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일본은 내가 이제껏 살아본 어떤 나라보다 향수를 달래기 쉬운 곳이므로. 한인 식당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했던 우즈베키스탄이나 독일, 홍콩에서의 유학 시절을 생각하면, 수도 한복판에 한인타운이 있어 언제든 치킨, 짜장면, 분식 등 온갖 한국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얼마나 편리한가. 심지어 요즘에는 현지 편의점이나 슈퍼에서도 신라면과 참이슬, 비비고 만두를 팔고 있으니 말 다 했다. 아무래도 미우나 고우나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교류가 활발한 덕분이리라.
도쿄에서 일하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기약 없는 일본 생활에 동의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어차피 언어와 문화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한국에 다녀올 수 있었으므로. 코로나 19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도 양국에서 2주씩 소요되는 자가 격리 기간을 감수한다면 다녀올 수는 있지만, 직장인 중에서 그만큼 휴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21년이 시작되면서 올해는 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점점 그 희망마저 희미해져 가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따라 우리나라가 사무치게 그립다. 그동안 1년에 두세 번씩 한국에 가서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오던 시간이 내 삶에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절절히 느낀다. 이곳에서 번 돈으로 양가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환전하는 뿌듯함. 면세점에서 친구들의 기념품을 살 때의 설렘.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에 내려, 도처에 가득한 한글 표지판과 간판을 볼 때의 안도감. 택시나 공항버스를 타고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시내로 진입할 때의 적당한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가족과 친구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벅찬 기쁨.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오면, 타국의 보잘것없는 외국인 노동자로서 근근이 살아갈 용기가 생기곤 했다.
타국에서 사는 사람에게, 고국에서 소중한 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다른 여행이 대체할 수 없는 원동력이고 보람이다. 그런데 기약 없는 기다림이 1년이 넘게 이어지자, 마음 한 구석에 해소되지 못한 우울감이 제법 축적된 모양이다. 온갖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힘을 바닥까지 끌어모아야 하는 실정이니. 남편과 함께 사는 나도 이렇게 타격이 큰데,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코로나 19 사태를 겪는 이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코로나 19에 다른 복합적인 요인이 겹쳐져 귀국을 결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 역시 한국에 돌아가 마음을 추스른 뒤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 때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편이 현재 직장에 만족해하고, 우리 부부의 재산과 스펙, 한국의 취업 시장, 수도권의 집값 등을 냉정히 고려했을 때, 귀국 후 지금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단념할 뿐이다. 장성해서 결혼까지 한 자식이 부모님 집에 얹혀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호주로 이민을 떠난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싫어서 떠나오지는 않았다. 공과 사의 구별이 없었던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과 당시 복잡하게 꼬여 있었던 인간관계가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스스로 몰아넣은 상황이 힘들고 막막했을 뿐, 한국이라는 나라 탓은 아니었다. 동시에 20대 후반 서울에서의 나보다 30대 초반 요코하마에서 내가 더 견딜 만한 이유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대단해서라기 보다는, 한 번 모든 것을 버린 뒤 낯선 땅에서 고독을 견디며 나만의 가치관과 행복감이 형성된 덕이 크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좋다. 여느 나라처럼 고유의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게 가장 익숙한 나라이기에 이 애정은 불가항력이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덕분에 고육과 문화, 인프라 등 풍성한 혜택을 누렸음에도 감사하다(요즘은 BTS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타지에서의 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의 원천은 결국 고향과 그곳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진리. 이 사실을 깨우치게 해 준 것이 코로나 19에게 고마워야 할 유일한 점이 아닐까. 전 세계의 나와 같은 수많은 교민의 향수병이 더 곪기 전에, 코로나 19가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