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예은 Mar 30. 2021

직장인 작가로 산다는 일

그저 쓰고 싶은 마음에 관하여

어린아이에게는 세상 모두가 꿈을 가지라며 재촉한다. 야망은 클수록, 목표는 높을수록 좋다며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를 품으라 말한다. 대통령이나 과학자, 유명 연예인이나 유튜버 등 아무리 거창한 꿈을 말해도 나무라기는커녕, 인자한 미소와 격려로 화답할 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 수록 꿈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뒷전이 되기 쉽다. 일찍부터 뛰어난 의지와 재능이 없는 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에 대한 고찰은 10대에는 '일단 대학에 붙은 다음, ' 20대에는 '우선 취업부터 한 다음'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30대, 40대가 되어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완전히 다른 꿈을 좇겠다고 선언하면 주변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긍정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어린 시절만큼 따뜻하지는 않으리라.




고객 센터에서 일하며 틈틈이 원고를 쓰는 내게 작가라는 꿈은, 어둡고 녹슨 반지하방에 이따금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 같은 존재다. 아름답고도 잔인한. 그 눈부심과 선명히 대비되는 깜깜한 현실이 지금 내가 어둠 속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언젠가 온전히 햇빛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불확실한 희망이 나를 애달프게 하기에.


매일 8시간의 감정 노동을 마친 뒤 개인 컴퓨터를 열어, 좀처럼 써지지 않는 글을 한 문장이라도 이어보려 끙끙거리다 보면 참담함이 성취감을 앞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업무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짓눌리는 듯한 감각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뜬다. 가끔은 꿈이라는 희망고문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차라리 그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을 막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가린다고 해서 가려진다면 꿈이 아니다. 어느새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작가라는 꿈과 녹록지 않은 현실 사이에서 겨우 도출한 타협안이 직장인 작가다. 사실 에세이, 소설을 비롯한 창작 분야는 일정한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생계유지가 어려우므로, 많은 지망생들이 투잡, 혹은 N잡의 길을 거친다. 고시생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공모전에 매달릴 수도 있지만, 문예창작과를 나오거나 작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나는 출판사 투고, 독립 출판, 텀블벅 등을 통한 출간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당분간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출근 전후와 휴일에 쓴 원고로 1~2년에 한 권씩 꾸준히 출판하다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 쓰는 시간을 늘릴 계획이다.


어쩌면 나는 안정적인 미래를 포기한 채 맹목적으로 꿈에 매달릴 만큼 스스로의 재능을 믿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결단력은 자신감에서 오는 법이니까.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한때 프리랜서 생활에도 도전했지만, 다시 직장인 작가로 바꾼 데는 내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니.


첫 여행 에세이를 내고 약 2년간, 프리랜서 여행 칼럼니스트 겸 번역가에 도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수입을 일정 궤도에 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좀처럼 원고료나 번역비를 밝히지 않는 클라이언트에게 먼저 금액을 제시하고 협상하는 과정도 진이 빠졌다. 또 여행 기사의 특성상 외교 분쟁과 전염병 등 주변 상황에 민감해, 꾸준히 들어오던 일감이 한순간에 끊기기도 했다. 게다가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으므로,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메일을 확인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무언가를 완성하지 않으면 입금이 되지 않다 보니, 돈이 되지 않는 개인 출간은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수입은 들쑥날쑥하지만 분명 상승세였기에 더 버텨볼 여유가 있었다면, 천천히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계 부담을 남편에게만 지울 수 없었기에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고, 수입은 두 배로 늘었다.


다시 취업을 해보니, 돈에 덜 매인 쪽은 프리랜서가 아니라 직장인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한 해의 성과에 따라 보너스 금액이나 연봉 인상 폭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는 이상, 일을 조금 대충 한다고 해서 월급이 깎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심지어 근무 중 화장실을 가는 시간이나, 흡연자의 경우 담배를 피우는 시간에도 돈을 버는 셈이고, 일하지 않아도 수당이 나오는 유급 휴가라는 고마운 제도도 존재한다. 프리랜서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호사다.


성장하는 동안 한 번도 염두에 둔 적 없는 고객 센터를 선택한 이유도 글을 쓰기에 괜찮은 조건이어서였다. 모든 고객 센터가 똑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 다니는 곳은 야근이 없고, 퇴근과 동시에 업무는 완벽히 잊을 수 있으며, 연봉을 포함한 사원 복지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더군다나 각자 맡은 전화와 메일에만 대응하면 되어서 인지, 전 직장에 비해 동료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적다. 고객 상담도 어쨌든 말과 글을 다루는 업무라 적성에 맞는지, 성과도 평균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운이 나빠 소위 말하는 진상 고객을 만나 쩔쩔 맨 날에는 그들의 발 닦개가 된 듯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전화를 끊은 뒤 눈물 콧물을 쏙 빼거나, 속으로 험한 욕을 하며 분통을 터뜨린 적도 있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하며 목격한 천태만상을 퇴사 후 '일본 콜센터에서 O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기에, 아무리 끔찍한 전화나 메일도 고마운 소재라 여기려 한다.




항간에는 퇴사 후 몇 개월 만에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거나, 취미로 쓴 웹소설로 수십 억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러나 모든 작가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그 글을 구상하고, 쓰고, 투고하고, 홍보하는 끈질기고 부단한 노력이 선행하기 마련이다. 운은 그다음의 일. 그들의 성공을 보며 자학하지 말고, 하루 8시간을 돈벌이에 빼앗겨야 하는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걸어야겠다. 영영  삶을 꿈으로  채우지 못하더라도,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결국  인생을 빛내주리라 믿으며.


Photo by Anthony DELANOIX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19가 일깨워 준 고국의 소중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