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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Feb 16. 2021

젊은 꼰대

말로만 듣던 꼰대가 내 얘기라면?


  항간에 '라떼는 말이야' 붐이 일면서 꼰대를 주제로 하는 콘텐츠가 많아졌다. 사실 '꼰대'하면 누구나 머릿속에 한 두 명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나이가 지긋한 상사를 떠올겠지만 예외의 경우도 존재한다. 그 예외란 흔히 말하는 젊은 꼰대다. 나이는 직급에 비해 어린 편이면서도 년차가 꽤 쌓였다면 젊은 꼰대의 범주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회사에서 보내는 해가 늘어 갈수록 어린 친구들이 내 밑으로 이어 들어왔다. 내 딴에는 그 친구들을 위한답시고 조언을 늘어놓다가 멈칫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친구들이 지금 나를 꼰대라고 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서였다.  되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면서 왜 사서 걱정하는 것이냐 물으면 답은 명쾌했다. 듣는 상대가 조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나의 꼰대 기질은 스멀스멀 연기를 피웠다.



  한 날은 비슷한 또래의 아래 직원이 똑같은 질문을 5번째 물어왔다. 참다못해 알려줄 때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지 않겠냐고 넌지시 말했다. 당황스러웠는지 조금 일그러진 사원의 얼굴을 보다가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 표정을 보니 문득 몇 년 전 똑같은 질문을 수 차례 던졌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사원처럼 이 일이 도통 숙달되지 않아 상사에게 되묻길 반복했고, 돌아오는 상사의 질책에 볼멘소리를 했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어려운 것인데 상사의 눈높이에서 나를 판단하는 것이 퍽 억울했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우연히 그 사원의 노트를 보고 나서 머리를 쳤다. 노트에 적힌 빼곡한 업무 매뉴얼은 누가 보아도 완벽했다. 아마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창피함을 무릅쓰고 질문을 했을 것이란 판단이 서자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딱 내 이야기였다.



  다른 날은 회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대리가 마음이 쓰여 어쭙잖은 위로를 건넨 것이 화근이 되었다. 대리는 회사 복지가 엉망이라며 한탄했다. 사실 그 얘기에 공감을 해주면 될 일이었는데 굳이 나는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했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거예요. 저 입사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에요.



  말을 뱉고 나서야 스스로 소름이 돋아 멍해졌다. 꼭 회사에 몇십 년 근속한 사람 마냥 동료를 타이르는 듯 하는 끔찍한 화법이었다.


 


  친구에게 내가 젊은 꼰대인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내게 말수를 줄여보라고 제안했다. 정말 필요할 때만 말하는 것이 실수를 줄일 수 있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혹은 싫은 말을 해야 할 때,  혹시 나의 피해의식이나 감정이 그 말에 묻어있지 않나 생각해보는 것 또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만약 내 감정이 담긴 말이라면 애당초 그 은 조언이 될 수 없는 셈이라고 얘기했다. 친구의 이야기는 백 번, 천 번 옳았다. 그 제안을 따라하니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조언을 빙자한 핀잔들을 목구멍에서 걸러낼 수 있었다.



  스스로 꼰대의 잠재력을 느끼고 있다면 한 걸음 물러나서 나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부디 꼰대행 고속열차에 제 발로 몸을 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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