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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Dec 26. 2020

업무시간 외 방해금지

퇴근 이후 시간은 제발 지켜주세요.

   직장인들에게 일주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는 노상 그렇듯 직장동료이다. 그러다 보니 동료관계는 그 의미가 확대되기 마련이고, 동료 간 서로의 삶에 개입하는 경계 역시 허물어지기 십상이다. 알게 모르게 옆자리 동료의 아이가 몇 살인지, 주말에는 어디에 갔다 왔는지, 동료의 아내가 어디 피트니스센터에 다니는지 등 우리는 서로의 삶에 많이 침투하게 된다.


  이따금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개입이 과도해지면, 서로 간 얼굴을 붉히는 일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직장동료가 관여할 수 있는 사생활 영역은 사람에 따라 그 마지노선이 다르다. 마지노선을 넘어오는 일이 더럿 생길 때면, 어김없이 스트레스는 찾아온다.


  마지노선을 정확하게 그어 두었음에도 그 영역을 시시 때때로 넘보는 이는 존재한다. 내게는 우리 팀 김과장이 그런 부류였는데, 그녀는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서 국가대표 급 선수였다.


 "김대리. 지금 솔로지?"  (네. 그렇죠.)


 "크리스마스에 솔로들끼리 모여서 홈파티나 하자."  (이 시국에 홈파티를요?)



  단칼에 호의를 거절하고 선약이 있다며 자리를 피하려 했건만, 김과장에게 목덜미를 붙잡히고 말았다. 그녀의 주특기 육하원칙 질문이 쏟아졌다. 언제? 누구랑? 어디서? 실제 선약이 있기도 해서 얼버무려 대답을 하니 집착왕 김과장은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 희생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사원은 김과장의 제안에 딱 보기에도 난처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난 김과장은 벌써부터 무엇을 먹을지, 주종은 무엇으로 할 건지 정사원 옆에 판을 깔고 앉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과장님. 파티 멤버는 누구누구 인가요?"   (일단 너랑 나. 김대리는 선약이 있대)



  정사원의 얼굴이 종이 구기 듯 구겨진다. 정사원은 나를 양해 구원의 눈빛을 보내지만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결국에 정사원은 김과장의 주도 하에 둘이 오붓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김과장은 업무 외에도 우리가 일상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갖는 사이기를 바랐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다소 불편한 점도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였던 개인주의자 정사원은 대체로 김 과장을 어려워하는 타입이었는데, 그녀는 가끔 내게 고민상담을 해오곤 했다.


"대리님은 소외받을까 안 두려우세요?"
"저는 혹시나 제가 자리에 빠지면, 자기들끼리 추억이 생기고, 또 그것 때문에 소외감 느끼게 되는 것이 무서워요."
"그래서 싫어도 자꾸 나가게 돼요."

 


  정사원의 얘기는 단연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 또한 공감되는 감정이었기에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 역시 집단생활이기에 소외감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감정이다. 여기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개인주의자면서도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면 불안을 느끼는 정사원 같은 부류였다.


  그들은 개인주의자의 삶과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안정감 이 두 가지를 저울질한다. 어쩌다 본인의 삶에 더 무게가 쏠리면 집단에서부터 소외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반대로 집단의 소속감에 더 저울이 기울면 자신의 삶을 잃는 것에 자멸감을 느낀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이라 단언할 수 없지만, 그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순간순간 균형 있게 저울질을 하는 것밖에는 마땅한 답이 없다. 개인주의자로서의 삶을 지킬 수 있기 위해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나 역시 멋모르던 어린 나이에는 소속감을 가지기 위해 무리에 열심히 섞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머지않아서였다. 누구보다 집단의 공익을 위해 노력하던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쁜 일로 무리에 섞이는 일이 소원해지자 그는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허탈하기 짝이 없었고 회의감이 밀려왔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게 제 회사생활 모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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