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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r 21. 2021

릴레이 퇴사

너도 나도 줄행랑

   

  퇴사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기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애석한 것은 그 순간이 모두에게 같은 날 한시에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요 며칠 날이 따뜻해서 야유회를 며칠 앞두고 있던 즘, 팀 내 실무자들이 돌연 대거 퇴사 선언을 했다. 마침 경쟁사에서 높은 연봉과 좋은 대우를 제시 우리 회사의 핵심 인력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 시기였다. 

  경쟁사는 우리 회사 내부의 대부분 부서에게 잡 오퍼를 했지퍼를 승낙한 직원들은 한 부서에서만 여럿이 나왔.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부서의 속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탈출하지 않으면 이 곳에 영영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며 후다닥 도망가기에 바빴다.

  한 달 사이에 부서의 인원이 반이나 삭감되었다. 내가 속해있던 그 부서는 예기치 못하게 이 빠진 그릇 짝이 되었다.  




  인원이 줄어들면 당연히 업무를 줄여줄 것이라 생각했건만 일은 보란 듯이 불어났다. 고급 인력들이 빠져나갔으니 성과는 저조할 테고 마음은 조급하니 프로젝트를 늘려 하나라도 성공해 보겠다는 산이었다.  

  쨌거나 임금을 받고 일하는 입장이니 회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안겨줘야 하는 것이 이 바닥 규칙이었다. 계산 공식은 한참 잘못되어 있었다. 기존에 10을 가지고 100을 창출했다면, 이제는 5이니 50을 바라야 하는 것이 맞으나, 5를 가지고 똑같은 100을 바라고 있었다. 남은 인원들에게 배려라곤 눈곱만치도 방책이었다.

  또한 이 끔찍한 방책에는 숨겨진 허점이 있었다. 바로 악순환의 고리였다.


  빈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선택했던 첫 번째 카드는 신입사원 채용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건실하고 번듯한 회사였기에 채용공고에 물 밀듯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회사는 게 중에서도 독하고 열정적인 지원자들을 골라 용했다.

  단순히 독해 보인다는 이유로 회사는 그들이 버텨낼 것이라 기대한 모양이지만, 그 해에 입사한 신입들은 다 줄행랑을 쳤다. 그들이 끈기가 없어 못 버텨낸 것이 아니었다. 용케 적색 신호를 잘 읽고 제 살길을 다시 찾아 나섰을 뿐이다.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발을 빼기도 쉬웠을 터였다.


  두 번째 카드는 경력사원 채용이었다. 신입사원 대신 업무 숙련도가 있는 경력을 채용다면 보다 빠르게 적응하며 제 몫을 해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카드 역시 처참히 짓밟혔다.

  오히려 경력사원들의 재직기간이 신입사원보다 짧았으니 더  필요도 없었다. 경력사원들은 대충 둘러보고선 일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앞으로 제가 해야 할 몫이 얼마나 방대한지 한눈에 알아챘다. 그들은 다급히 환승열차에 다시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내민 카드는 회사 내부 인력 지원이었다. 회사 유관부서에서 인력을 지원받아 잠시나마 팀을 메꾸어보자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 어찌어찌 지원은 받을 수 있었다.

  어느 부서든 제 팀원들을 내어주싫어했다. 특히 일 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방어 태세가 심했다. 마지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준 인원들은 그 부서 내에서 가장 역할이 미미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된 사람들은 3년 차 과장과 5년 차 대리였다. 생각보다 높은 연차의 인력과 일하게 되어 한 숨 돌렸다고 기대했지만 그도 잠시 뜻밖의 마찰이 생겼다.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하듯 현업 부서의 업무는 모르니 그들은 배워야 하는 입장이었. 하지만 그들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잠시 머물렀다 떠날 곳이므로, 열심히 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 실무에 투입된 인력이었으나, 대외업무를 주로 맡으며 미팅 자리에만 줄곧 참석했다. 에 가서는 그들이 리자 역할을 하며 업무 프로세스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혼란만 가중되어버렸다. 결국 기존에 있던 관리자 그러진 질서에 인력 철회를 요청했다. 조직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것삽시간이었다.




  결국 피를 보는 자은 정해져 있었다. 나처럼 신입은 아경력 모자란 매모호한 연차의 실무진들이었다.

  당시 내게는 회사에 남아있거나 혹은 다른 회사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나는 두 선택지를 팽팽히 저울질했고, 끝남아기로 결정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혹한 환경 무수한 채찍질 나를 포함한 용사들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난장 브루스였던 부서는 리의 가파른 성장가도와 함께 안정화되었다. 결국 능선 끝에 도달했고 그 업적으로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으니 나름 쾌거를 이룬 셈이었다.

  다만 그때 회사가 무작정 여러 카드를 들이밀지 않고 우리를 조금 기다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상식 밖의 계산 방식은 접어두고 우선 기대치를 낮춘 후 서서히 올려주었더라면 말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조금은 덜 괴롭지 않았을까?


  변화를 인정하지 않거를 고집하는 건 결국 아집에 지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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