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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Jan 09. 2021

정시퇴근은 없다.

일을 끝내고도 퇴근을 못하는 이유.


  '눈치'는 살아가는 데 있어 꽤 필요한 센스 중 하나이다. 일터에서 눈치 하나로 근근이 버티는 자들도 있을 만큼 말이다. 은근한 눈치싸움들 다양한 장소와 때에서 일어나는데.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것이 바로 '야근'이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상사가 있다. 상사는 여러모로 회사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하려는 타입으로, 일 욕심과 출세욕이 많았다. 그는 공공연하게 그 욕구를 표현하는 편이었고, 그 탓에 모두가 그를 야망꾼이라 불렀다. 어떤 면에선 그 상사를 팀장으로 만나 좋은 점도 많았으나, 뜻밖의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팀 내부는 고지식한 분위기가 강해 야근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었다. 근래 흔히들 말하는 워라벨의 워 자만 꺼내도 '그게 뭔데?'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퇴근이 늦을수록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칭송받을 만큼 큰 오류를 범하고 있던 때였다.



  팀장은 항상 최후까지 남아 사무실 소등을 하는 자는 반드시 우리 팀원 이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대놓고 이것은 쇼이며 보여주기 식이라고 부연설명을 뒷붙여주기 까지 했다. 출세욕이 많은 사람인지라 그의 심정이 이해는 갔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팀장은 팀원들이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시간 안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종적을 감추기 일수였다. 그동안 팀장은 필요 없는 출장, 의미 없는 회의, 담배 타임 등을 가지며 자신의 퇴근시간을 늦춰갔다. 늘 본격적인 업무를 정시퇴근 시간이 다다라서야 시작하는 편이었다. 거기다 대고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인사를 할 때면 팀장은 항상 뒤통수에 대고 핀잔을 늘어놓았다. '눈치를 좀 보아라'라는 것이었는데, 일이 없는데 남아있을 필요가 있냐 여쭈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일이 있어 남아있는 줄 아냐며 되물었다. 그리고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면 팀장의 말마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의미 없이 마우스 휠만 굴리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다들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며 눈치싸움에 휘말려 야근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먼저 엉덩이를 떼는 자는 패자이며, 마지막 퇴근의 주인공이 최후의 승자인 비극을 찍고 있는 셈이었다. 누구 하나 좋을 것 없는 야근문화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은 이 문가 그릇된 것인지 알았음에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먼저 시범을 보여줘야 끝낼 수 있음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 굴었다.


  

  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사람을 피 마르게 했다. 어차피 정시퇴근은 할 수 없으니 일에 스피드도 안 나고, 업무에 집중할 필요가 사라졌다. 결국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 없는 야근수당을 쥐어주는 것이었다. 이런 나날들 속 타 부서에서 전배 온 대리 한 명문화에 동참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퇴근시간이 되면 조용히 짐을 싸 인사를 하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그를 좋게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죄명이었고, 대리가 아닌 그의 직속 사수를 나무랐다. 알아서 교육을 하라는 말이었다.




  야근 전쟁에 가까스로 참여하던 내가 일찍 들어갈 때면 팀장은 다음 날 보란 듯 내게 과다한 업무를 안겨주었다. 너무 속이 보여 팀장에게 반기를 들고 이후 계속 정시퇴근을 하기 시작한 어느 날이. 그는 내게 면담을 하자 했고, 면담을 시작하니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인사고과가 안 좋을 거라며 조언을 빙자한 협박을 늘어놓았다. 그 협박에 수긍할 생각 따위가 일체 없어 매일 그 대리와 순서를 앞다투어 퇴근했고, 팀장은 내게 욱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대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시발탄으로 몆몇 부서원들이 정시퇴근에 하나 둘 동참했다. 몇 안되던 머릿 수는 나날이 늘어갔고 결국에는 남는 자만 남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누군가는 그 의미 없는 눈치 싸움 속에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으며 지내고 있겠지.


팀장은 내게 넌지시 말했다.



나도 집에 가고 싶다.

'그럼 제발 좀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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