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쓰는 일은 참 흔하다만, 사직서를 쓰는 일은 인생에서 손에 꼽는 일이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공 들여 썼던 이력서가 참 무색해질 만큼 사직서는 별 다른 것들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 이 곳에서 피땀 흘리며 노력했던 시간들과 추억은 과거가 된다. 주마등처럼 이 곳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지만, 이젠 이 곳도 사진첩 속 한 페이지로 기록될 뿐이다.
한파주의보 발령이 내린 월요일 아침, 꽁꽁 얼은 손을 녹이며 자리에 앉았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이 보였다. 모니터를 켜다 말고 빳빳한 A4용지를 샅샅이 읽어 내렸다.
사직서였다. 그것도 주인 없는 사직서. 소속, 직급, 성명 등의 개인정보는 없고 사직 사유만 줄줄이 적혀있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은 회식은 대체 왜 하는지?
그렇게들 욕하면서 왜 앞에만 서면 벙어리인지?
보여주기 식 보고서는 누굴 위한 것인지?
까내리기 문화는 대체 누가 시작한 건지?
무능력한 임원들을 자를 생각이 없는 것인지?
잦은 담배 타임은 업무태만 아닌지?
담배를 못 피운다는 이유로 배척은 왜 하는지?
물가 상승도 못 따라가는 연봉 상승률은 대책이 있는지?
왜 일개 직원이 회사 재무를 걱정하게 하는지?
당장의 일도 못하면서 왜 자꾸 일을 만드는지?
성과주의야말로 불공정하다는 걸 모르는지?
사직서는 단연 회사에 큰 화제가 되었다. 주인 없는 사직서는 각 책상 위에 1부씩 놓여 있었는데, 임원이라고 하여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사직서에 깊이 공감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도를 벗어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항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신입사원의 퇴직서 전문을 보고 똑같이 따라 하냐는 둥 빈정 어린 말도 많았다. 한 임원은 어떤 자식이냐며 CCTV를 돌려보라며 원맨쇼를 하다가 인사팀에게 제지당했다.
모두들 궁금해하는 것은 한 가지, 사직서의 주인이 누구인지 였다. 이 시기에 회사를 관두면 의심받기 딱 좋았기에, 예정되어있던 퇴사자들도 다소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몸을 사릴 거면서 왜 임직원의 사기를 떨어트리는지 모르겠다며 몇몇은 그를 철부지 취급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사직서의 전말을 알게 되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직서를 쓴 주인은 회사에서 내로라했던 유명인사였다. 직원들과 잘 어울리고 실적도 좋아 평판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능력을 인정받아 조기 승진을 한 케이스였기에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측근을 통해 들은 얘기로는, 그 당시 이미 다른 곳에 둥지를 틀 곳을 마련해둔지라 곧 떠나야 할 입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높게 평가해 준 회사와 직원들에게 고마웠고, 회사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에서 그런 쇼를 벌였다고 했다. 대다수는 퇴사하는 마당에 그동안 혼자 삭히던 불만들을 전사에 떠벌리고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진실은 당사자만 알 테지만, 그런 가십거리보다 그의 쇼가 가져다준 변화가 꽤나 고무적이었다는 데에 나는 놀라웠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의 쇼를 작은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모른 체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괜히 공론화하여 임직원들을 동요시킬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회사의 방침은 예상을 빗나갔다. 불현듯 회사는 공개 임원 평가를 진행했고, 그가 적어낸 사유들을 리스트화하여 직원들을 상대로 리서치를 진행했다. 기타 사항으로는 양식이나 길이는 상관없으니, 회사에 바라는 점이나 개선할 점을 제출하라 했다. 지나가는 바람이겠거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적어낸 설문에 회사는 아주 성실히 응답했다.
워라벨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제도를 만들어 앞장서서 직원들을 독려시켰고,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압축해 불필요한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했다. 그의 쇼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많은 것들이 일사천리로 개선되었다.
연인 사이에 서로 표현을 해야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무언가 변화를 요한다면 문제를 감추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끄집어내야 자그마한 혼란이라도 야기할 수 있다. 그 혼란이 격변을 일으킬지 그대로 묻힐지는 아무도 모르나 주사위라도 굴려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