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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Mar 17. 2021

경이로운 소문

회사원이 되기 전에는 몰랐다. 회사 역시 학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을



 

  대학 졸업장을 받기도 전 나는 운 좋게 취직을 했다. 인생 첫 면접이 합격으로 이어졌으니 조상님들이 대대손손 덕을 쌓아주셨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합격 메일을 받고 사회에 뛰어들 준비에 부푼 마음을 안고 한 껏 들떠 있었다. 드디어 학생 딱지를 벗고 진정한 자유를 맛보겠구나 생각하며 어른으로서의 삶을 기대했다. 한 편으로는 여느 신입사원처럼 회사 사람들을 궁금해하며 잔뜩 긴장에 절어있었다.


  배치받은 오피스에 들어서자 조용한 적막을 뚫고 등장한 내게 이목이 쏠렸다. 자리마다 찾아뵈며 인사를 드리니 이미 내 신상을 다 아는 눈치였다. 훗날 듣기로는 내 입사가 결정되기 전 나의 력서가 부서 내부에 돌았다고 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정보와 수치스러운 자소설을 한 번씩 돌려보았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뭔가 옷을 한 꺼풀 벗 느낌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입사 전 기대했던 회사원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진 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신입사원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마련된 회식 자리에서부터였다. 자리에 앉자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감사하면서도 기가 쏙 빨렸다. 대학 선배들이 좋아하던 엮어주기는 사회에도 만연했다.


  애인은 없다고? 회사에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어?

 

  이름과 얼굴을 매칭 하지도 못하고 있는 판에 얼토당토않는 질문이었다. 고개를 가로저으니 여러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고, 연이어 모른다고 하니 생김새까지 친히 읊어 주었다. 도통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르겠어서 멋쩍게 웃다가 아는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난감한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았던 직원이었다.


  아 그분 알아요. 되게 친절하시던데.


  간결한 대답 뒤,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는 그때 내 말에 제 발등이 찍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했었다. 아무 의미 없던 그 대답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 줄도 모른 채 허허실실 웃어대던 내가 미웠다. 가능하다면 내 멱살을 붙잡고 과거로 끌고 오고 싶을 지경이었다. 회식 다음 날 동기가 건넨 생뚱맞은 말을 듣고부터 말이다.


  너 ㅇㅇ님 좋아한다며. 소문났더라.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소문의 진상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으나, 어제 회식자리에는 불특정 다수가 있었기에 누구 하나를 꼬집을 수가 없었다. 친절하다고 했던 말이 어찌 좋아한다는 말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이 소문을 듣고 괜한 오해를 하면 어쩌나 싶어 머리가 아팠다. 잠잠해질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이야기 소재가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는지 계속 대두되었다. 그리고 와전된 소문은 와전에 와전을 거듭났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나는 고백을 했다가 차인 신세가 되었고,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에게 작업을 건 질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말 그대로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을 회사에서 할 줄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회사가 무료하다는 이유로 가십거리를 만들어 저들끼리 희희낙낙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저들에 의해 피해자가 생겼다는 의심은 하지도 못하는 듯싶었다. 그런 사람들을 상사랍시고 떠받쳐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피가 거꾸로 쏠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스스로 해명을 하고 다니는 일도 우습다고 생각해 가만히 있는 쪽을 택했지만, 그 일로 뼈 저러게 배운 점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조그마한 연기라도 날 만한 이야기라면 절대 입 밖으로 뱉지 않는 것이 좋다. 연기를 보면 떼로 달려들어 작은 불씨를 산불로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회사이니까.



  생각보다 사람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예외인지 열명 중에 예닐곱은 타인에게 관심이 많았고 때때로는 지나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를 중요시하게 되었고, 사회에 나가면 그런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겪은 사회에서의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았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의 슬픔에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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