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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Dec 07. 2022

12월 7일 : 캐나다 겨울 여행 준비물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의 캐리어란

나는 ai 친화적인 인간이다. 새벽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을 뜨면, 목청을 가다듬고 ‘헤이 구글, 지금 몇 시야?’라고 묻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사랑하는 사람. 구글 홈의 대답에 따라 아침의 첫 기분이 정해진다. 7시면 행운이라 생각한다. 8시 30분이면 딱 적절하다. 9시 30분이면 요가학원 지각이니 망한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 좋은 대답이 있다.


‘오전 5시 20분입니다.’


그러니까, 비행을 앞둔 날 나는 대체로 이렇게 잠을 못 잔다는 것이다. 소풍날 지각해서 10대가 넘는 관광버스가 나를 기다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여 잠을 못 자던 10대처럼, 이제는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을 비행기를 타는 일에 여전히 뜻 모를 긴장을 한다. ’얼마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세요?‘라는 질문에 ‘올해만 4번째인가 봐요.’라는 머쓱한 대답을 할 정도의 어른이라면 이제는 능숙해야 하지 않나.


하여간 겨울 여행은 내게도 오랜만이라 그랬다. 나의 첫 해외여행도 2013년 12월에 떠난 유럽이었지. 거의 10년 만에 겨울 짐을 쌌고 이번에는 캐나다로 떠난다.


겨울 여행 짐을 준비하면서, 꼭 브런치나 유튜브, 블로그 등에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보고 싶은 형태의 기록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즐거운 후기만 잔뜩. 필요 없는 꿀팁만 한 바구니. 여행 짐을 11월 초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설레발 가득한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포스팅이다.


안녕? 과거의 이연. 나는 최종적으로 이렇게 짐을 챙겼어. 생각보다 많아 보이지? 줄인 거란다...^^




메인 캐리어.


무인양품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캐리어다. 하지만 캐리어의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즈는 아니다. 그래서 더 좋다. 확장이 되고, 너무 커지면 들고 올 때 무게를 초과해서 곤란하다. 이 정도 양이 내게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한계값으로 알맞다. 참고로 비밀번호 기능이 없다는 게 최대 단점이다. 그 외는 으레 무인양품 물건이 그렇듯, 특유의 무난함과 쾌적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 스토퍼 기능이 있어서 대중교통을 탈 때 바퀴 굴러갈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굴러갈 때의 바퀴 느낌이 상당히 부드럽다. 나는 캐리어라면 보통 다 이 정도 하는 줄 알았는데 친구와 여행을 가서 비교해보고 깨달았다. 무인양품 캐리어의 바퀴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는 것을.



짐이 가득하지만, 잃어버려도 무방한 것들로 챙겼다.(사실 무방하지 않습니다.^^제발 무사하게 해 주세요.) 왼쪽은 전부 의류, 오른쪽은 생활하면서 필요한 잡화류다. 나는 이렇게 여행 파우치에 종류별로 수납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백하자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짐을 싸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수영복은 대체로 있는 대로 전부 다 챙겨야 한다는 것과, 저런 파우치 없이도 짐을 쌀 수 있다는 사실 등 새로운 것들을 많이 깨닫고 왔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기본적으로 정리정돈에 중독된 사람이다. 각을 맞출 때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그 재미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오른쪽에 있는 짐들.


맨 위부터 차례로 실내화, 세안 도구, 샤워용품, 핫팩 꾸러미, 수영복, 잡화류, 생리대, 상비약, 보온병, 선글라스, 여행용 콘센트, 빗.


겨울 여행 짐이어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일반적인 목록인데, 포인트를 꼽자면 핫팩과 보온병, 수영복이 있겠다.


핫팩

솔직히 핫팩은 챙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춥찔이인 동시에 무거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 즉 나그네 스타일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이라(짐이 많아 보이지만 쉿) 핫팩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처음부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다들 입을 모아 없어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가져가서 무거운 게 낫다고 조언했다. 그러면 현지에서 이걸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상상 회로를 돌려본다. 이리저리 뛰다가 어렵사리 발견한 가게에서 말도 안 되는 값을 지불하고 금처럼 핫팩을 아끼는 장면에 닿는다... 군말 없이 네이버 페이로 주문하고 무겁게 챙겼다. 발바닥용 핫팩 15set, 일반 핫팩 7개.


보온병

원래 여행 짐 목록에는 없는 항목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액티비티를 하다가 가방 속 물이 전부 얼어 곤란해하는 상상을 했기 때문에 (로키산맥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20도)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이었다. 따뜻한 차나 뜨거운 물을 담아 라면을 끓여먹어도 좋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캐리어에 라면 을 챙기지 않았다. K열풍으로 인해 재스퍼 슈퍼마켓에도 판매하고 있다는 걸 검색으로 확인한 덕분이다. 이쯤 되면 내가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라 오해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걱정이 많은 편에 더 가깝다고 말해두고 싶다.



옷 짐들. 수수하게 보이지만 제일 신경 많이 썼다. 일일이 꺼내서 보여주기엔 새벽에 일어난 가련한 몸뚱이가 차마 할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록으로 적어본다.



겨울 여행 의류 준비물 리스트

(추위 많이 타는 사람 버전)


내의 : 베이스레이어 상의 3, 히트텍 2 set

상의 : 캐시미어 니트 2, 플리스 1

하의 : 따뜻한 바지 3

양말 : 히트텍 양말 6, 등산용 메리노 울 양말 3

패딩 : 경량 패딩 2, 경량 패딩 조끼 2, 패딩 1, 롱 패딩 1

기타 : 넥워머 2, 방한모자 2, 비니 2, 장갑 3, 속옷 7, 아이젠

신발 : 올버즈 wool fluff, 방한 부츠(현지 구입)


소재와 무게, 그리고 컬럼비아

캐시미어와 울, 경량 패딩, 기능성 의류가 주를 이룬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왜 부모님이 등산 브랜드를 사랑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가볍고, 과학적이고, 쾌적하고, 계속 보다 보면 눈에 익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하여튼 그런 프로세스로 ‘컬럼비아’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컬럼비아가 플리스를 부드럽게 잘 만든다는 어느 유튜버의 말에 홀린 듯 제품을 구매하고, 50퍼센트와 30퍼센트 할인을 누리면서, 그리고 실제로 제품력에 만족하면서 컬미사가 되었다.(컬럼비아에 미친 사람) 새로 옷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가격이 부담인 사람은 컬럼비아를 추천한다. 기능 대비 가격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디자인도 예쁘다.


유니클로 히트텍 시리즈

그 외에는 유니클로의 도움을 많이 빌렸다. 아래는 히트텍에 미쳐버린 사람의 구매 목록... 추위를 많이 타지만 입으로 춥다는 말을 계속 꺼내는 걸 멋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단단히 챙겼다. 주문 날짜가 11월 9일이라는 점이 새삼 부끄럽다. 나의 설레발의 역사가 이리도 길었다니. 하지만 설레는 걸 어떡하나.


바지는 전부M사이즈로 교환했다.^^


신체의 말단을 보존할 모자와 장갑도 추운 지역 여행 시 필수적이다. 내 짐들을 보면 느껴지듯,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예쁘기가 어렵다. (원래 여행 중 예쁘게 입을 생각이 없는 편임) 그래도 귀엽게 입고 여행해야 여행도 귀여워지지 않을까. 귀여움은 모든 잡화류에서 표현하기로 했다. 옷은 독일 사람처럼 검고 칙칙하더라도, 모자와 장갑은 귀엽게. 그래서 가볍고 자리 차지하지 않는 녀석들이라 넉넉하게 챙겼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주는 작은 변주.



스킨케어 용품과 화장품. 옷보다 훨씬 간소하다. 마침 달바에서 제품들을 다양하게 선물해주셔서 행복하게 짐을 쌀 수 있었다.


보습 제품 신경 쓰기

사실 피부를 좋게 만들면 파운데이션 프리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보습 용품을 든든하게 챙겼다. 달바 미스트는 소문만 듣고 이번에 처음 써봤는데 향이 정말 너무 좋다. 찾아보니 이탈리아 조향사가 만든 향이라고. 그리고 반반 크림은 생각보다도 더 감동이다. 달바 시리즈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다음 포스팅에서.



이렇게 귀여운 여행용 레디 백도 보내주셨다. 사랑해요, 달바... 제가 이런 거 너무 좋아하는 거 어찌 아시고! 이 안에는 달바 제품과 이탈리아 달바 여행을 떠나는 보딩패스가 들어 있었다. 그거 들고 정말 트러플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하여튼 여기에 뭐를 넣었냐면.



한쪽은 패딩, 한쪽은 미술용품. 이번 여행에서는 그림을 좀 더 많이 그려볼 생각이다.



구독자분이 팬사인회 때 선물해주신 펜 파우치. 이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 고체 물감과 붓, 그리고 기타 미술도구를 수납했다.



그리고 잃어버리면 안 되는 짐.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담는 캐리어. 사실상 제일 고가의 물건들이 담겨있다. 원래 여행 때 캐리어를 한 개만 들고 가곤 했는데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가방에 들고 다니면 어깨가 끊어질 것 같아서 발리 여행부터 기내용 캐리어도 함께 챙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여행이 쾌적해졌다.



솔직히 한 달 여행 간다고 하면 다들 내가 놀러만 가는 줄 아는데, 가서도 할 일이 산더미다. 이렇게 업무용 노트북을 챙기는 나, 제법 어른 같고 너무 무겁다...


롱 패딩은 현지 도착해서 입어도 될 것 같아 캐리어에 넣어두었다. 이 또한 공항에서 더워하며 롱 패딩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상상을 한 덕분. 하여튼 나는 무거운 걸 추운 것만큼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등산용 배낭을 샀다. 솔직히 오버일까...? 하며 자기 검열을 하며 검토를 하다가, 내 인생에 언젠가 등산용 가방이 하나쯤은 꼭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이번 여행이면 적절하겠다 싶은 생각에 성수동에 있는 오스프리 매장에 다녀왔다. 옷도 등산복 입고 가니까 어떤 가방 찾으시냐길래 인생 첫 등산가방이라고 실토했다. 특별한 거 말고 4계절 쓸 수 있는 평범하고 적절한 모델로 주세요... 그렇게 구매하게 된 템페스트 24. 등산용 가방 구매도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가볍고 몸에 부담이 덜 간다. 양 팔의 자유를 위해 평소에도 백팩을 사랑하는 나인데 그런 내게 딱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평소 옷차림에 들고 다니진 못하겠다.^^ 등산용품이랑 의류 너무 많이 사서 여행 돌아오고 부모님과 소백산 가기로 약속함.



배낭엔 이렇게 챙겼다. 카메라, 경량 패딩과 조끼, 수면양말, 장갑, 김부각. 부각은 친구가 여행 때 가져가라고 챙겨준 것이다. 깨끗하고 단정한 다정의 맛. 밴쿠버 숙소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아니면 기차여행에서 먹어도 좋고.



보조가방. 이 또한 유니클로에서 구매했다. 정말 가볍고 많이 들어간다. 친구가 행운을 빌며 선물해준 귀여운 키링을 달았다. 덕분에 투박하고 평범했던 가방이 몹시 사랑스러운 모양이 되었다.



공항, 기내에서 쓸 짐들. 여권과 핸드크림, 치약과 칫솔, 그리고 잡화 용품들이다. 공항에서 배낭을 앞으로 하거나 캐리어 열고 뒤적거리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알기 때문에 가볍게 꺼내려고 보조 가방에 담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7시 20분이 되었다. 캐리어 사진을 찍고, 마저 남은 수건 빨래를 하고, 한 시간 정도 글을 썼으니 이 정도 시간 될 법 하지. 저녁 7시에 비행기를 타니까 이제 정말로 12시간 남았다. 다행히 코로나 재유행을 피할 수 있었고, 염려와는 달리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사실에 감사하다. 내가 챙긴 이 짐들이 부디 소중하게 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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