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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Dec 08. 2022

12월 7일 : 긴긴 수요일

수요일 저녁에 출발했는데 수요일 낮에 도착하는 여행이란

다행히 저녁 7시 비행기였다. 아침에 요가학원을 다녀오고, 점심을 먹은 후 산책까지 할 수 있는 시간. 출국일 전까지 이리도 바쁘게 움직였는데 몸이 버텨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님이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음... 캐나다요. 100% 여행은 아니고, 가서 일도 해요. 제 직업이 작가이거든요. 대답을 마치고 보니 그럭저럭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롭게 만나는 이들에게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먼저 말하면 다들 궁금해하는 것도 있고, 의도치 않게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어서 그냥 작가라고 한다. 근데 작가 자격으로 캐나다를 여행을 간다는 게 ’그냥‘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근사한걸. 세상에 감사한 일이 많다.




출발 전에 여행 중 그리워할 것 같은 음식을 먹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돈가스를 먹으러 왔다. 살이 희길래 보니까 치킨까쓰였지만 말이다. 이 가게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두 번 올 동안 한 번도 주문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 근데 그 잘못 나온 메뉴들이 하나같이 맛있다는 게 웃음 포인트... 다음엔 나의 주문을 받아주시길. 돌아가서 이 가게의 돈가스를 먹어봐야겠다.



공항에서는 떡볶이를 먹었다. 생각보다 많이 매운맛. 막상 먹기 전에는 허기졌는데 음식이 별로 안 들어갔다. 이때부터였나요? 제가 입이 짧아진 게...




이번 캐나다 여행 메이트 과수.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한 달 씩이나 시간을 낼 사람이 주변에 없었는데 마침 과수가 퇴사를 하면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우리 둘 다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에어캐나다의 첫 번째 기내식. 포크 어쩌고저쩌고. 포크냐 비프냐... 하는 질문만 듣고 포크(돼지고기)를 달라고 했다. 연근과 알 수 없는 모닝빵의 조화... 과수는 기내식을 곧잘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정말로 맛있게 잘 먹어버림. 하지만 나는 기내식을 맛있게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늘에서 만든 지상 음식 흉내 같은 느낌이랄까. 일본은 도시락을 잘 만드는 나라니까 기내식도 다르려나? 문득 궁금하다. 하여튼 이번 식사 대부분을 남겼다.



궁금해서 받아본 캐나다 맥주. 맥알못이라 그런지 맛은 그냥 맥주 맛이다.



과수에게 나눠준다고 컵에 따랐는데 대체...




그리고 긴긴 비행시간이 되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다운로드하여놓은 게 있어서 3편까지 보면서 왔다. 송중기가 나오다가 잠시 안 나와서 아쉬웠는데 다시 등장. 얼굴이 너무 예뻐서 눈 호강하며 봤다. 나보다 어려 보이게 생겼다. 멋지고 신기한 사람. 목소리도 좋고요...




간식으로 나온 샌드위치와 비스킷. 그래도 이 샌드위치는 거의 다 먹었다. 좋은 열량 보충제가 되어준 느낌.



곧이어 해가 뜨고, 비행이 지루해졌다. 그럴 때 늘 비행이 꿈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것도 끝날까? 하다가 언젠가는 허무하게 끝나 있는 것이다. 나를 아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놓고는 다시 먼 하늘로 떠나는.




창 밖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한국 시각은 새벽 2시경이었다. 해를 보면 생체시계가 그래도 얼추 맞게 흘러간다. 시차 적응은 수월할 것 같은 기대를 해본다.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아침으로 나온 기내식. 손도 못 댔다. 과일만 먹었음. 혀와 위장이 원하지 않는 타이밍과 맛이었다. 이걸 먹지 않아서 온종일 기운이 없었지...(봉크)




친구는 비행기 타면서 잘 잔다. 밥도 잘 먹고. 나도 너 같은 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잠도 거의 못 잤고 밥도 잘 못 먹었다. 그래도 그게 나란 사람이려니 한다. 내가 그러는 게 나로서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그냥 나 같다.




이 친구와 걷다 보면 마치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언가 확인하거나 사진 찍을 게 있으면 툭 멈추는 사람. 그걸 기다려주는 나. 내가 늘 멈추는 편이었는데 나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서 신기하고 재밌다.



그녀가 멈춘 장면 끝에는 늘 귀엽거나, 따뜻하거나, 포근한 것들이 있다.




해파리 앞에서도 멈춰보고.




창 밖을 빤히 보기도 한다. 아니 진짜 강아지 같잖아.



이 고양이는 뚱뚱하지만 세 살이라고 한다. 뚱뚱하지만 세 살입니다...라는 대답이 얼마나 솔직하고 귀여운가. 몸은 크지만 애기예요, 라는 말이니까.




캐나다에서 처음 먹은 음식은 비건 베트남 식당에서 파는 쌀국수였다. 대체육 비프가 들어가는데 꽤나 싱크를 잘 맞춘 느낌. 직원이 정말 친절했다. 팁 주는 것에 꽤 긴장했는데 버튼이 알아서 세팅되어있다.



유난히 오래된 레코드 가게가 많았던 거리. 전부 내가 듣던 음악들이 실물로 나와있는 게 신기했다.




밴쿠버는 아직 그리 춥지 않다. 고백하자면 지금 숙소가 더 춥다... 귀찮다는 핑계로 따뜻한 옷을 더 껴입지 않았다. 기록을 마치면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지.



거리의 화가도 만났다. 추운 공기가 같이 섞여서 만들어진 유화란. 어릴 때 그래서 수채화를 좋아했다. 물이 안료를 옮겨놓은 흔적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그런 상상.





오늘은 퍽 지쳤는지, 자꾸 멍해지게 되고 낮잠을 자게 된다. 푹 쉬고 내일 밴쿠버 다운타운을 다녀와야지. 귀여운 트램이 지나다니던데 그것도 한번 타보고.


아주 긴 수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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