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 Dec 12. 2022

12월 11일 : 재스퍼에서 일하기

추운 곳에서 일이 잘 되는 현상에 대하여

오늘은 과수와 함께 각자 하루를 보내기로 한 날이다. 과수가 없다고 대신 재밌는 곳을 놀러 나가기보다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재밌는 건 너랑 해야지.



늘 그렇듯 새벽에 깼다가 다시 아침까지 이어서 잠을 잤다. 9시 50분으로 꽤 늦은 기상이었다. 천천히 걸어서 브런치를 먹으면 좋은 시간이겠구나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오전까지는 운동하다가 2시부터 일을 하니까, 그와 비슷한 패턴이다. 날씨가 어제보다 춥다고 하여 여러 겹을 정성껏 껴입고 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푸른 느낌이었다.




캐나다에 와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바로 등산복의 레이어링 시스템이다. 생각보다 겨울 여행 시 추위에서 견디는 차림을 참고할 만한 블로그 포스팅이 별로 없었다. 가장 도움을 많이 빌렸던 검색 키워드가 '겨울 등산'이었다. 등산을 할 때는 고도가 올라가면서 더욱 추워진다. 체감온도가 내가 지금 여행 온 이곳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추워지는데, 내가 일상복에서 따뜻하게 입기로 결심해서 입었던 차림과 과학을 고려한 등산복의 레이어링 시스템은 확연한 차이가 났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것이 아까워... 레이어링 시스템에 대해서 간단히 남겨보고자 한다. 전문가가 아닌, 추위를 많이 타는 전지적 춥찔 시점으로 적어보았다.


1. 베이스레이어

베이스레이어는 몸에 가장 먼저 닿는 옷으로, 내복이라 생각하면 쉽다. 땀 흡수가 잘 되면서 동시에 배출을 잘 시키는 소재여야 한다. 아니면 메리노 울로 된 제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면소재는 땀을 머금어 오히려 몸을 춥게 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히트텍에는 면이 일부 포함되어있다. 아웃도어 활동이 아닌 단순 겨울 여행 시에는 활용해도 무방하다. 만약 산을 가거나 할 계획이 있을 시에는 기능성 베이스레이어를 챙기는 것이 좋다. 나는 자전거 브랜드 라파의 제품을 챙겼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추천하진 않고요... 겨울에 자전거를 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추천한다.


2. 미드레이어

베이스레이어 위에 입는 단열재, 보온재 특성의 옷. 플리스나 경량 패딩을 많이 입는다. 나는 포근한 느낌이 좋아서 주로 플리스를 입었다. 캐나다에서 구매한 아크테릭스 아톰 SL 후디 여성 제품도 미드레이어인데, 가벼우면서 입까지 가릴 수 있게 옷이 높게 올라와서 좋다. 그리고 모자 크기도 끈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미드레이어만 잘 입어도 거의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실내에 들어오거나 활동을 해서 더울 경우 지퍼를 열거나 벗는 식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기억할 점. 추워지기 전에 미리, 더워지기 전에 미리.


3. 하드쉘, 소프트쉘

베이스레이어와 미드레이어 위에 입는 껍데기 형태의 옷이다.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눈이나 비가 내릴 수 있으므로 주로 방수, 방풍 기능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부의 습기는 내보내는 기능성 원단을 활용해서 (ex. 고어텍스) 가격이 대체로 비싸다. 나는 아직 하드쉘까지는 없는데 과수는 있다... (내가 너무 춥다고 겁줘서 구매함)


4. 스노우부츠

눈이 생각보다 많이 쌓인다. 재스퍼의 길거리 중 눈을 치우지 않은 곳에 슬쩍 발을 넣어봤는데, 발이 부츠보다 깊이 빠져서 화들짝 놀라며 발을 뺀 철없는 기억이 있다. 방수가 되면서 보온이 되는, 내부에 털이 있으면서 길이가 긴 부츠를 추천한다. 한국에서 구하기는 어렵고 캐나다 현지에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소렐, 어그, 팀버랜드 제품 등이 있다.


5. 비니, 장갑

귀를 가리면서 동시에 머리의 체온을 보존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장갑도 필수다. 생각보다 추운 환경에서 발보다 손이 더 시려서 힘들 수 있다고 한다. 장갑도 현지에서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6. 바지

따뜻한 바지에 발수 기능이 있으면 좋다. 나는 컬럼비아에서 패딩 바지를 구매했다. 고가의 스키 바지까지는 필요 없는 것 같다.(물론 스키를 탈 거면 필요함)




그밖에 추운 나라 여행할 때 팁이 있다면, 너무 많이 겁먹고 챙겨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 환경에 맞는 옷은 전부 여기서 판매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많다. 카페를 가거나 가게를 가도 모두가 한사랑 산악회처럼 아웃도어 옷을 입고 있는 진풍경. 이참에 고프코어 룩을 연습해보자.


고프코어 룩

아웃도어 활동에서 입는 옷을 평범한 일상복과 매치해 개성적인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을 말한다. 깔끔한 정장 위에 우비를 걸치거나, 스커트 위에 등산복을 입는 것이 그 예다.




아침은 재스퍼 힙스터 카페에서 먹었다. 사실 이렇게 힙한 곳을 올 생각이 없었는데 사진 속에서 햇살이 좋아 보이길래 왔더니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어제 만났던 아웃도어 매장 직원도 있었다.(특징 : 고프코어 힙스터) 나만 한사랑 산악회... 구석 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Sunhouse Cafe

+1 780-852-4742

https://maps.app.goo.gl/bJ5WDsPakEn9wzFe8?g_st=ic


눈앞에 펼쳐지는 굴뚝 연기와 기차들. 재스퍼에 잘 없는 2층 매장이라 처음에 길을 찾을 때 헤매었는데 들어오니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앞으로 재스퍼에서 머무는 일주일 매일 먹는 급식으로 정했다.




미드레이어 : 파타고니아 + 아크테릭스

주문을 하고 이북리더기를 꺼내 책을 읽었다. 이북리더기의 장점은 특수 잉크 덕에 밝은 햇살 아래에서도 글씨가 잘 보인다는 것이다. 인기 많았지만 나만 읽지 못했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있다. 여행지에서 읽기 좋은 긍정적이고 귀여운 책이다.




나는 아보카도 토스트를 참 좋아하는데, 그게 남이 만들어준 거라면 특히 그렇다. 근데 이 카페의 맛은 너무나 범상치 않았고요... 오죽하면 핸드폰 다 끄고 맛에만 집중하면서 이거 어떻게 만들지, 하면서 레시피를 적을 정도였다. 내가 기록한 바로는 이런 맛이다. 요리를 하면 좋은 점이 음식을 먹을 때에도 어떻게 요리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걸 반영해서 손님에게 대접하면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


1. 버터에 구운 식빵

2. 레몬즙을 섞은 바질 페스토 + 넉넉한 올리브유

3. 아보카도 + 루꼴라 + 페퍼민트 + 수란 + 결정이 큰 소금 + 자잘한 후추 + 석류


페퍼민트가 정말 큰 핵심이었다. 석류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고... 참고로 캐나다에서는 물을 공짜로 준다. 인색한 유럽 인심만 접하다 수돗물이 깨끗한 캐나다에 오니 이런 점이 참 좋다. 그리고 아직 많은 끼니를 먹은 건 아니지만 모든 음식의 간이 입에 잘 맞았다. 내가 먹성이 좋아서? 그것도 맞는 듯하다.




아름다운 것은 한번 더 보자. 나도 수란을 저렇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아보카도 토스트 자주 해 먹어야지.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 왔다. 처음에는 코인빨래방만 보이길래 내가 상상한 카페가 아니라 생각하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섰는데, 자세히 보니 2층에 카페가 있었다. 재스퍼 힙스터들은 주로 2층에 머무나요? 들어가 보니 역시 내가 좋아하는 무드였다.



SnowDome Coffee Bar

+1 780-852-3852

https://maps.app.goo.gl/vybuKrDQSYur3QzdA?g_st=ic

이렇게 큰 책상 좋아한다고요. 일하기 좋은 카페의 요건이 몇 가지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배경음악이 부드러운 재즈일 것

2. 인테리어가 심플할 것

3. 책상이 넓고 쾌적할 것

4. 음료와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할 것

5. 손님이 적당히 있을 것


그런 점에서 완벽한 카페였다.




어제 다녀온 기차 여행을 최대한 현장감 있게 살리고 싶어서 바로 유튜브 콘텐츠 편집을 했다. 촬영본 클립을 모아보니 전부 2시간. 그래도 아이패드가 있다면 빠르게 편집할 수 있다. 며칠 글만 쓰다가 영상 편집을 하니까 재미있었다. 중간에 졸릴 때 낮잠도 자주고, 핫초코로 당 충전하며 열심히 일하기.





와중에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는데, 과수는 지금 집에 있다고 했다. 뭔가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카페에서 귀여운 전리품을 샀다. 다양한 종류의 수제비누가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christmas tree라는 이름의 왼쪽 끝에 있는 초록색 비누를 샀다. 네가 기뻤으면 좋겠어.





집에 돌아와서 편집한 영상 상영회를 바로 열었다. 둘 다 따뜻한 물을 마시며 20분 남짓한 기차 여행 영상을 보았지. 내가 과수에게 비누를 사다 바친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영상을 편집하며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날이 선 말투로 대했는지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생리를 한다는 핑계는 너무 얄팍하다. 지구상에서 생리를 나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준 과수가 고마워서, 오늘은 내가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저녁은 혼자 먹으러 나왔다. 오늘은 일이 잘 되었으므로 저녁까지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시차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건, 사실 일을 안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노동을 하니까 금세 한국의 나로 돌아왔다. 2시간짜리 영상을 20분으로 편집 완료한 것은 뭐랄까. 낚시를 하러 나가서 대어를 낚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런 내게 맥주를 선물하고 싶어서 간단한 음식과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 이곳이 오늘의 세 번째 행운일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The Spice Joint Lounge

+1 780-852-3615

https://maps.app.goo.gl/4u6RLEPRjdDJWh2NA?g_st=ic




가깝길래 들어간 가게였는데, 자메이카 스타일의 샌드위치 집이었다. 맥주 종류가 여러 개 있길래 어떤 것이 판타스틱 비어냐고 물어보니까 냉큼 Red Stripe란다. 판타스틱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 좋은 맛이었다. 가격은 8달러. 정말 비싸군요.



먹다 보니 맛있어서 어느 나라 맥주인지 궁금했다. 과연, 자메이카... 재스퍼에 넘쳐흐르는 자메이카 노래와 맥주의 바이브가 행복한 저녁이었다.




곧이어 나온 음식. 잘 보면 내가 한입 먹었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없었기 때문. 이렇게 맛있는 포테이토를 준다고요? 하... 지금도 이 맛이 생각나서 한숨이 나온다. 정말 감자튀김 주제에 이런 맛이 날 수 있나. 그릴 샌드위치는 먹으면서도 내가 만들고 싶지만 만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불 향과, 잘 달라붙은 치즈, 그리고 균형감 있게 뿌려진 갈릭 칩, 여린 식감의 샐러드. 귀여운 피클까지 뭐하나 빼놓을 것이 없었다.





숙소로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나에게 더 다정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주었다. 누워있는 과수 생각이 나서 쿠키와 우유를 샀다.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거든.




외국에 가서 꼭 먹어볼 것 중 하나가 우유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유는 나라마다 맛이 상당히 많이 다르다. 캐나다 우유는 어쩐지 먹어보지 않아도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역시나 예감 적중이었다. 우유를 고를 때 나름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우유마다 표기된 퍼센트가 다른 것이었다. 0%, 1%, 2%, 4% 섬세도 하지. 근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추측하기로는 지방의 함량이지 않을까 싶은데 저지방 우유는 맛이 없기 때문에 과수를 위로하기 힘들고, 고지방 우유는 맛있을 게 뻔하지만 그릴드 샌드위치를 저녁으로 먹은 내가 먹기엔 죄책감이 드는 숫자여서 그 사이인 2%를 골랐다. 먹어보니 역시나 맛있었고. 팀 홀튼에서 산 초콜릿 쿠키도 훌륭한 맛이었다. 저렇게 평범하게 생겨서는 어찌나 균형감을 갖춘 맛이던지. 아니 나 오늘 맛있는 것만 먹었잖아요?




집에 들어오기 직전에 직은 사진이다. 카메라를 꺼내는데 잘 작동하지 않았다. 핸드폰이 추워서 그랬나 보다. 어플로 찍으니까 촬영이 가능했다. 그래서 남긴 사진. Love you. 내일은 어떤 하루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10일 : 기차여행 마무리, 그리고 재스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