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 비행

by 이연

비행기 안
귀마개가 필요해서 귀마개를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기엔 머쓱하리만큼 정적이 도는 비행기 안이다. 옆 자리엔 친절한 아주머니가 앉으셨다. 겨우 4시간이 흘렀구나. 아닌가? 겨우가 아닐까. 이번 여행은 정신없는 전야제가 있었지만 공항부터는 정말 편안했다. 깔끔하고 한산한 새 터미널, 비슷한 가격과 모양새로 구한 목베개, 두 번의 전통 공연, 대한항공, 자리도 마음에 든다. 이상하지? 내가 바르셀로나에 간다니. 같은 비행기, 각기 다른 여정을 갖고 탄 사람들과 함께 정적을 나누고 있다. 우습게 생긴 안대는 생각보다 꽤 도움이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덜어낸 것들을 떠올린다. 그래. 잘 두고 왔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점심을 먹었고, 소화제는 잘 맞았다. 터미널이 이토록 클 줄 몰랐던 나는 스타벅스가 멀어 눈앞의 도시락 매장을 갔고, 아주 마음에 드는 디톡스 워터를 한 병 살 수 있었다. 그래. 디자인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간직한다. 너는 아마 나와 함께 바르셀로나까지 가겠지. 자정 도착으로 급하게 예매한 호스텔도 기대된다. 뜨거운 샤워와 간편한 조식, 그거면 충분하다. 깔끔하게 반팔에 셔츠를 입고 원래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체크인하러 가야지. 가는 길에 시장에 들르면 재미있겠다. 우선 유심칩부터 사고. 기쁘다. 여러 날 머물 바르셀로나가 기대된다.






자고 일어나니 도착까지 3시간 남았다. 장거리 비행이 익숙해진 거야? 어이가 없군.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지. 비행기 안의 나는 생각보다 심심해하지 않고 그저 잠을 잘 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아 애초에 노트를 펴지 않았다. 젠장, 기대한 내 모습과 현실이 달라.


신문 두 부와 빅이슈를 한 권 읽었다.





두 시간 반 뒤엔 암스테르담이다. 환승시간이 한 시간 반이란다. 카운터에서 몹시 촉박한 시간이라 말하며 은근한 눈치를 준다.(왜 이렇게 끊었냐는 듯) 구구절절 내가 예약한 게 아니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당부에 열심히 고개만 끄덕이고 왔다. 시간이 촉박하구나. 빨리 움직여야지 뭐. 그런 회상과 상관없이 찾아온 두 번째 기내식 시간. 늘 맛없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안다. 간편하게 맛있기 쉽진 않다만, 고기로 맛이 없기도 쉽지 않을 텐데. 실망스럽다. 이번 여행은 어쩐지 휴양을 떠나는 느낌이라 이상하다. 여전히 나는 많이 걷고 조금은 고생스러울 텐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뿐하고, 시간이 이만큼 흘러 벌써 야속한지.







정말 쉽지 않게 맛없는 식사였다. 빵과 버터가 미안하다는 최소한의 뜻처럼 느껴졌다. 화장실 옆 좌석의 장점은 화장실을 기다림 없이 갈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곁에 오래 있는 것이다. 이 작은 화장실에서 다들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만 궁금해하기로 하며 앞자리 사람의 영화를 흘끔 훔쳐본다. 저분은 쉼 없이 영화를 보는구나. 나는 자고.. 먹고.. 쓰고.. 스도쿠 좀 하고.. 그랬지. 시간이 금방 지나갔어. 그럼에도 내리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곧 내릴 듯 분주하다. 에휴. 내 환승보다 내 짐의 환승이 걱정이다.







내게도 약간의 조바심은 있다. 돈을 벌지도 않는 주제에 벌 때보다 많이 쓴다. 음. 다시 벌면 해결될 문제네? 간단하구나.






스키폴 공항에 도착해간다. 하으으.. 잠을 많이 잤네. 근데 환승하고 4시간이나 더 가야 한단다. 와! 벌써 도착이야! 정말 깔끔한 운행이었어.





여기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면세점 미피한테 거하게 치였다. 12.45유로나 쓴 거 실화냐..







아깐 자면서 와서 별로 심심할 기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정말 할 것이 없다. 아직 삼십 분밖에 안 지났다고? 간식도 먹기 싫어요. 토마토 주스는 맛이 대체.... 옆의 중국인은 대체... 뒷사람은 왜 내 발을 차고... 하... 숙소 가도 잠이 안 올 것 같아 조금 걱정이다. 물을 아껴뒀다가 수면유도제랑 먹어야지.







라고 말해놓고 또 3시간을 잤다. 이렇게 잘 잔적도 드문데... 목베개 덕분인가... 창 밖엔 도시가 비친다. 도착했다. 드디어 바르셀로나. 손목시계를 7시간 전으로 돌려놓는다.


가로등이 특이한 금빛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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