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스무 살이 되고 싶은 엄마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양쪽 팔이 무거워 잠에서 깼다. 눈을 떠 보니 왼쪽에는 첫째 딸, 오른쪽에는 둘째 딸이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다. 뽀얗고 부드러운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는 아가를 보니 팔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조심스레 볼을 쓰다듬는다. 아기가 움찔하며 움직일 때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서둘러 아침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기들을 양팔에 끼고 더 누워 있고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치원 버스가 오기까지 약 50분 남짓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첫째와 둘째에게 급하게 아침을 먹인다. 어설픈 계란 프라이와 치즈 그리고 살짝 거뭇하게 탄 식빵. 여전히 덤벙대는 실수 투성이 엄마지만, 아이들은 그런 나를 믿고 의지한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 차에 올라타는 순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유치원 버스에 앉은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교복처럼 매일 입는 롱 패딩과 질끈 묶은 머리, 푸석한 얼굴에 안경 낀 내 모습.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서 내 모습을 응시한다.
나는 언제부터 꾸미지 않고 생활한 걸까? 문득 아이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엄마도 예쁘게 화장하고 다녀”
“엄마도 나처럼 공주님이면 좋겠어”
오늘따라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남편에게 잘 보이려 애쓰던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옷가게에서 옷을 고를 때도, 화장품을 살 때도 항상 내가 필요한 것들만 샀다. 퇴근 후에도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웠다. 퇴근 후의 일상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어딜 가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떠올린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내모든 생활의 포커스는 아기들이다. 육아를 시작함으로써 달라진 생활일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엄마야”
“아빠는 멋져. 아빠는 왕자님이야”
매일 병아리 같은 조그마한 입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아이들.
첫째가 내 무릎에 앉으면 둘째가 질투하며 옆자리를 차지한다.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코를 간지럽힌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부드러운 향기가 난다. 볼록한 배를 내 두 팔로 감싸 안아준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이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생각해 보면 애 키우느라 바빠 꾸밀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하지 않는 일을 감히 아이들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저 나를 꾸미는데 들이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2년 만에 미용실에 간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스타일로 해주세요”
결혼하기 전 남자 친구(현. 남편)와 거리를 누비던 나의 20대 시절이 그리웠을까. 나는 과감하게 탈색을 하고 염색을 했다. 심경에 변화가 생기면 머리를 싹둑 자른다는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나의 마음은 ‘다시 어려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꽤 파격적인 염색의 마무리 단계에서 미용실 선생님이 물어보신다.
“오늘 어디 가세요? ”
“그냥 집에 가서 애 봐야 해요. 하하”
“그래도 예쁘게 드라이해 드릴게요”
“네. 헤헷”
수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예쁘게 머리를 하고는 유모차에 아이를 앉혀 시장으로 향했다. 미용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후 5시. 유치원 차에서 내린 아이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엄마 예뻐. 나도 미용실 가고 싶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밝게 웃으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헤어스타일 변신 후에도 다시 평범한 주부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료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에 그 마음이 싹 달아났다.
보여주기 위한 꾸밈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오늘 하루도 무탈한 일상을 사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