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앉아서

2022. 05. 11

by 로라윤


‘멍하니 앉아서’
오늘 오랜만에 아침에 여유가 있었다. 아침에 여유가 있는 날은 침대에서 소파로 건너 앉아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며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여름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풀냄새가 나는 초록빛의 나무들이 펼쳐져 있다. 집 앞에 공원도 있고 어린이집이 있어 사람들이 사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나의 정신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려준다.


내가 정신이 많이 없구나를 딱 알 수 있는 때가 있는데, 집을 둘러봤을 때 집이 개판일 때다.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고 이불 정리는 당연히 안되어 있으며 머리카락이 바닥을 쌓였을 때 그때 알 수 있다. 내 정신이 많이 피폐해졌음을. 오늘 눈을 뜨고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단 내가 멍하니 앉아서 정신을 차리는 소파 자리가 책으로 어질러져 있었고 내가 보는 창밖은 이불 빨래로 시야가 차단된 상태였다. 다행히 설거지 거리는 쌓이지 않아 있었지만 바닥에 머리카락은 먼지와 친구를 이루어 굴러다니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서 나의 정신을 장착할 공간이 없어졌다. 또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중요한 일들 때문에 밀렸던 사소한 to do list. 이 사소한 것들이 크게 느껴지다니. 나의 나약함이 인정하기 싫다.


눈을 뜨고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나의 책상 앞에 앉았다. 창 밖을 보며 멍하니 앉아서 나의 정신을 장착해본다. 비로소 정신이 들고서야 사소한 일들을 다 해치워 버렸다. 고장 난 청소기를 고치고 집 안의 대청소를 시작해냈다. 나의 소파를 이불 빨래 따위가 걸리지 않는 창 밖이 잘 보이는 자리에 다시 배치를 했다. 쓸고 닦고를 하고서야 나의 마음이 바로소 가볍다. 오늘은 그저 to do list들을 해치운 날이지만 나의 하루 시작점을 깨끗이 청소한 날이기도 하다.


멍하니 앉아서 시작한다. 나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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