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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6. 2017

트립 투 타이완 얼론-3



단수이에서 시먼딩 가는 버스를 탔다. 아종면선 곱창국수를 먹기 위해서였다. 곱창에 고수에 국수라니 이거는 나의 모든 주변인들이 인정하는 나를 위한 음식이기 때문에 오직 곱창국수를 위해 시먼딩으로 갔다. 여행을 다닐 때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맛집'은 항상 후순위에 두는 내가, 무려 곱창국수를 먹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시내버스를 탔다. 그만큼 먹고 싶었다. 무슨 맛인지 너무 궁금했어...

다리가 너무 아파서, 피곤해서, 그리고 바깥 풍경이 평화로워서 금세 잠들어버렸다. 중간중간 느릿하게 눈 떠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계속해서 비가 왔다. 





시먼딩에 도착해서 바로 아종면선 곱창국수로 향했다. 가는 길이야 구글에 잘 나와있긴 한데 골목의 중간쯤에 있기 때문에 '왜 들어가자마자 안보이지?'라고 동공 지진하지 마시길 바란다. 참고 좀 더 걸어 들어가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 선 국숫집이 나온다. 심지어 도착 시간이 4시 45분 정도였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아주 큰 냄비에서 젊은이가 열심히 국수를 젓는다. 그러다 보니 국물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끈적한 국물이 종이컵에 담긴다. 딱 봐도 한국 사람이기에 고수 없이 국수만 한 사발 받았다. '저기... 나 고수 좋아하는데 고수 많이 줘'라고 애처롭게 말하자 젊은이가 환히 웃으며 고수를 한 집게 가득 퍼주었다.





놀랍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걸쭉하고 훨씬 신 맛(왜 신 맛이 나는지 모르겠음. 식초를 많이 넣은 것도 아닌데) 곱창 냄새가 분명 나는데 그게 역하지 않고 맛있다. 앉아서 먹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서서 먹어야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땀 뻘뻘 흘리며 서서 먹기 때문에 하나도 안 창피하다. 젓가락도 안 주고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한다. 비가 와서 약간 서늘했던 기운이 국수 몇 스푼에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큰 그릇을 시켰는데도 후후 불어가며 식혀 먹으니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하루만 더 묵었어도 한 번 더 먹으러 갔을 텐데. 





시먼딩은 정말 말 그대로 명동 느낌. 명동을 평소에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기념품도 많이 팔고 어린 친구들이 놀만한 곳도 많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도 많다. 무엇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색색깔 간판 불빛이 젖어드는 게 보기 좋았다. 






비 오니까 거리가 훨씬 훨씬 더 예뻐서, 우산 없이 쫄딱 젖어서 다니는데도 좋았다. 하염없이 시먼딩을 걷다 보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라 숙소로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다음에 대만에 또 올 때 방문할까 싶었던 스린야시장에 가기로 결심했다.


버스를 잡아타고 스린야시장으로 가는데,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잘 맞고 다니긴 했지만 버스정류장에서 내릴 때는 차마 맨몸으로 감내할 수 없는 비가 쏟아졌다. 정류장은 컴컴하고, 가로등도 잘 없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나와 함께 버스에서 내린 한 40대(로 보이는 여성분)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유창하지 않지만 정갈한 영어로 5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스린야시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비는 그새 더 거칠어졌다. 


결국 입고 있던 남방을 머리 위로 걸치고 횡단보도가 바뀌면 뛰어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마치 영화처럼, 그분이 우산을 씌워주며 '지금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너를 스린야시장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가겠다'라고 말했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쳐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오고 길이 어두운데 같이 가는 게 좋겠다'며 나를 끝까지 스린야시장 초입 우산가게까지 데려다주었다. 


'대체 대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거예요?'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물음에도 그녀는 쑥스럽게 웃으며, '가는 길이에요, 괜찮아요, 그리고 한국에 여행 갔었는데 한국 사람들도 다들 굉장히 친절하던데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덕분에 우산 가게까지 비를 맞지 않으며 도착했고, 저렴한 우산을 하나 구입했다. 네다섯 번을 허리 굽혀 고맙다고 인사하고 스린야시장으로 들어갔다. 





비는 너무 많이 오고 사람은 너무 많고. 혼자 다니다 보니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스린야시장 자체는 맹숭맹숭한 이미지로 남았는데 가는 길에서 만난 인연 덕분에 마음이 들떴다.





그래도 야무지게 잘 챙겨 먹었다. 전병과, 우유와, 취두부까지. 취두부는 간이 조금만 덜 되어있었어도 다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짜서 한 개 밖에 못 먹었다.







타이베이의 밤은 참 아름다웠어. 타이베이 사람들은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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