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관광객들이 꼭꼭 가야 하는 투어가 있다.
예쓰진지 투어(예류해상공원, 쓰펀폭포, 진과스, 지우펀)
4명 정도의 인원이 대만 택시 기사들에게 하루 일당을 주고 가면 딱 좋은 루트다. 타이페이가 아니라 타이페이 근교의 관광지를 도는 것인데, 나 같은 홀로 여행족은 4명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택시 투어가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여러 관광상품이 마련되어 있다(예쓰진지는 혼자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지 못한다)
나는 마이리얼트립에서 타이페이 근교 버스 투어를 신청했다. 1인이 17,000원 정도의 돈만 내면(지금 확인해보니 16,400원으로 가격 내림)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근교를 도는 거다. 처음에는 버스로 이동만 하고 나머지는 혼자 알아서 하는 투어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이드 설명이 많았다. 가이드가 대만의 역사부터 미처 책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사실들까지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루 정도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도 괜찮은 분들께는 정말 정말 강추다. 처음에는 '어라? 생각보다 말이 많네?' 라는 느낌에 이어폰을 끼려고 했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어느새 빠져 빠져.
아침 열 시에 타이페이 역 출발이다. 숙소에서 멀지 않아서 우버를 잡아탔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서 세븐일레븐 어묵을 두어 개 집어먹었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 같은 아침 식사...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는지 나중에 같이 투어 돌아다니던 한국인 커플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 먹는 저런 거 먹을까? 너무 냄새 안 날까?'라고 말했다. 웅. 냄새나. 그래서 맛있어.
요러케 사람들이 모여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세 팀이 각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오후에 비가 엄청 엄청 많이 왔다. 아직은 비가 오기 전.
첫 번째 방문지는 예류 해상공원이다. 혼자 온 관광객은 나밖에 없었다. 하하하.
(https://www.myrealtrip.com/offers/10117 참고)
예류 해상공원은 작은 곶에 조성된 공원으로, 침식과 풍화 작용을 거쳐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희귀한 모양의 바위들이 해안에 모여 있으며 푸른 바다와 침식된 산호 조각물들이 보기 좋다.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여왕머리바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굳이 여왕머리바위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자연이 만들어낸 모양새가 너무 멋져서 바위만 봐도 재밌다.
이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바위도 많다.
솔직히 제일 기대 안 한 곳이었는데 가장 볼만 했다.
이런 웅덩이도 너무 신기해서, 혼자 싸돌아다니며 열심히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었다.
넘나 신비한 자연...
지나가는 한쿡인에게 사진도 한 장 부탁했다.
70분 정도 구경한 후 대만의 나이아가라라고 불리는 스펀 폭포로 향했다. 그런데 솔직히 대만의 나이아가라는 오버고 그냥 폭포가 있는 공원이 울창하고 시원하다. 나무가 많음.
대신 진짜 이 폭포 보는 것이 끝. 사 먹을 것도 없다.
다음 방문지는 스펀인데 여기가 의외로 맛있는 게 많음.
꽃보다 할배에 등장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고 한다. 천등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 날리는 곳인데, 길게 뻗은 철로 양쪽으로 수많은 상가가 늘어서있다. 거의 대부분 천 등 집이다. 철로는 실제로 기차가 다니는 길이라 기차 오는 소리가 나면 무방비하게 길 안에서 포즈 취하고 있던 사람들이 빨리 뛰어들어와야 한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길을 아무렇게나 방치해놨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천등을 직접 날리진 않았고 사람들이 어떤 문구를 썼나 보는 게 재밌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 둘은 비트코인 더 오르게 해주세요 라고 했는데... 어떻게 원하는 대로 잘 되고 계시는지...
'대표님, 신사업 좀 그만 구상해주세요ㅠㅠㅠ'라고 쓴 두 여인들의 풍등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거 먹으러 여기 가도 모자라지 않다. 땅콩 아이스크림+땅콩가루+고수+밀전병 콜라보에 진짜 정신이 혼미했음.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아서 '먹을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데 꼭 머겅. 두 개 머겅. 약간 눈치 보여서 한 개만 먹고 말았던 게 너무 아쉽다. 다시 갈 것도 아닌데 두 개 먹을걸...
받자마자 미친 듯이 먹어버리느라 사진 찍지 못한 닭날개 볶음밥도 꼭 먹을 것. 두 개 먹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차피 또 가지도 않을 거 체면 차리지 말고 한 개 더 사 먹을걸...
이렇게 기차가 들어온다. 느린 기차도 아니라서 꽤 무서움.
하늘 위로 올라가는 풍등
그냥 풍등 장사하는 곳이다.
스펀에서 버스를 타고나면 진과스로 간다. 황금박물관이 있는 곳. 일본 식민지 시절에 이곳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세계 2차 대전을 준비하던 일본이 이 도시를 본격적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20세기 후반에 금이 고갈되면서 폐광이 되었는데 워낙 깊고 고즈넉한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대만 정부가 관광지로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옛날 일본인 마을이 있던 곳이라 일본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이 대만에게는 자유 식민주의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대만 사람들은 다른 식민지 국가들에 비해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기득권에 속하지 못했던, 전체 인구 15%에 불과했던 원주민들은 일본에 의해 차출당해 이 광산에 처박혔다. 군함도처럼 끝없이 금만 캤다.
그런 장소가 고즈넉하고 한적한, 아름다운 숲이라 더 슬펐다.
버스 투어인 건 맞지만 진과스까지 올라오려면 대만관광청의 요청에 따라 관광버스가 아닌 대만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과 버스를 함께 탔지만 그들은 진과스를 들르지 않고 바로 지우펀으로 향했다. 가이드 말로는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일본인들이 등록하는 여행 코스에는 아예 이 장소를 빼버린다고 한다. 진과스를 채우고 있는 관광객들은 95%가 한국인, 3%가 중국인, 2%가 서양인으로 보였다.
혼자 열심히 돌아다니는데 진과스 입구 쪽에서 풍등이 보였다.
이제 지옥의(?) 지우펀으로...
지우펀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이 된 곳이다. 가파른 골목과 계단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타이완의 대표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오래전 아홉 가구만 살면서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해오면, 아홉 가구가 사이좋게 나누어 9등분 한다고 해서 지우펀이라고 불렸다 한다.
광산. 홍등. 광산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때는 환락가로 유명했다. 그래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곽과도 맞닿는 장소로 여겨진다.
예쁘긴 한데 정말 숨 쉴 틈도 찾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그래도 예쁜 건 맞다. 다음에는 비 안 올 때 가보고 싶다. 우산에 열다섯 번 정도 눈 찔릴 뻔했다.
홍등이 가득 찬 거리보다는 지우펀 뒷골목들이 더 예쁘다.
가이드 님이 사진을 또 찍어주심. 추위에 시달리고 비에 젖음. 타이페이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타이페이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비가 와서 우버를 잡았다. 우버 아저씨와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데 영어도 너무 잘하고 친절한 아저씨였다. 무엇보다 따님이 한국 여행 갔다 온 이야기를 중국어+영어로 신나게 하며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그럼 원래 우버나 택시 가격보다 훨씬 싸게 공항에 데려다주겠다며, 자기 딸과 함께 (너네) 가족들 기념품 사고 공항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빗속을 헤쳐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언어라는 게 참 뭔지. 잘 하지도 못하는 중국어 몇 문장 했다고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결국 다음날 몇 시에 만날지 약속을 잡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대만 마지막 날 밤인데 이대로 잠들기 아쉬워 집에서 따스하게 옷 갈아입고 중샤오둔화로 혼자 맥주 마시러 나갔다.
옆자리 대만 청년들이 말 걸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이 너무 빨라서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그들은 웃으며 Enjoy your time 하고 말았다.
혼자 중샤오둔화 맥주집에서 흑맥주를 두 병 정도 마시고.
집에 와서는 해장한답시고 만만대찬 컵라면도 먹었다. 진짜 핵맛탱.
다음날 아침에는 가이드님이 엄청 엄청 추천해준 량면도 먹었는데...
이거 땅콩 소스, 마늘, 양파, 오이, 당근 들어간 시원한 국수라고, 한국인이 싫어할 수가 없는 맛이라고 했는데 레알 진짜였다. 숙취가 약간 있어 대만 왓슨즈에서 숙취해소 약을 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