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마치 “나를 봐주세요”라고 말하듯,
온몸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동물이 있다면
과연 어떤 동물일까요?
멋진 갈퀴의 사자도, 기다란 코를 가진 코끼리도 아닙니다.
바로 공작새입니다.
공작새는 가만히 있어도 화려한 존재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암컷에게 구애할 때,
자신의 꼬리를 활짝 펼치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
경이롭다고 느껴질 만큼 강렬합니다.
당당하고,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색’이라는 한자가 지닌 의미와도 잘 어울립니다.
색(色)은 사람 인(人) 자와 꼬리 파(巴) 자가 결합된 한자입니다.
이 한자는 색을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색이란,
공작새가 꼬리를 세워 자신을 드러내듯
사람이 자신의 꼬리를 세우는 행위,
즉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개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작새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색이 있습니다.
청록과 에메랄드 사이에서
빛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미묘하게 바뀌는 색이 피콕 그린입니다.
그래서 이 색은 늘 보석 같은 컬러로 느껴집니다.
피코크 그린은 우아함과 고급스러움, 그리고 신비로움을 함께 품고 있는 색입니다.
자연의 풍요, 성장, 행운, 그리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까지.
그리고 계급과 권위, 강한 개성을 동시에 상징해 온 색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예술과 신화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 속에서 신들의 여왕 헤라가 등장할 때면 공작새와 함께 종종 등장합니다.
질투와 권력, 위엄의 여신 헤라는 공작새의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와 닮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헤라는 자신의 부하였던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에게 제우스의 연인 이오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제우스의 부탁을 받은 헤르메스에 의해 아르고스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충성을 다한 아르고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눈을 모두 뽑아 자신의 상징인
공작새의 깃털 위에 옮겨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공작새의 꼬리에 박힌 수많은 눈 모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성함과 권위, 감시와 통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공작새는 바람둥이 제우스를 감시하기 위해 존재했던
가장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살아 있는 CCTV’가 아니었을까요?
동양에서는 공작새를 ‘아홉 가지 덕을 갖춘 새’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아한 자태와 질서 있는 움직임, 균형 잡힌 색과 위엄 있는 태도까지. 공작새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품격까지 갖춘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동양에서는 공작문(孔雀紋)이라는 전통 문양을 만들어 길조, 부귀, 명예, 존엄, 장수를 상징해 왔습니다.
검약이 미덕이던 조선 시대의 복식 문화에서도 공작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화려함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대에 그나마 장식이 허용된 공간이 바로 흉배였으며, 용과 봉황 다음으로 계급과 관직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공작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공작새가 권위와 품격을 상징했다면, 민화 속에서 공작새는 암수한쌍으로 그려지며,
가정의 행복과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민화에서 공작새는 화려한 깃털을 지닌 모습으로 아름다움과 번영을 상징하는 길조로 등장합니다. 또한 공작새는 길게 늘어진 깃털의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 ‘수대조(綬帶鳥)’로 불렸으며, 그 음이 ‘목숨 수(壽)’와 같아 장수를 상징하는 새로 인식되었습니다.
예술 속에서 피코크 그린은 화려함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작의 방(The Peacock Room)입니다. ‘피코크 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실내 장식 예술 작품입니다. 정식 명칭은 《Harmony in Blue and Gold: The Peacock Room》으로, 우리말로는 ‘청색과 금색의 조화: 공작의 방’이라 불립니다.
이 방은 1877년, 중국 도자기를 수집하던 영국의 해운업자 Frederick R. Leyland의 런던 자택 거실로 만들어졌습니다. 공간을 꾸민 사람은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 James McNeill Whistler였습니다.
처음 의뢰는 벽에 걸릴 그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부분적인 장식 작업이었지만, 집주인 레일랜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휘슬러는 방 전체를 짙은 청록빛과 금빛으로 과감하게 채워버립니다.
천장과 벽, 가구에 이르기까지 공작새 문양이 가득 그려졌습니다. 돌아온 레일랜드는 이러한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휘슬러는 방 한가운데에 공작 두 마리를 그려 넣습니다. 오른쪽의 꼬리깃과 날개를 활짝 펼친
공격적인 공작은 레일랜드를 수세에 몰린 왼쪽의 공작은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휘슬러는 이 갈등을 《Art and Money: or, the Story of the Room》이라는 글을 남기며, 예술과 돈, 후원자와 예술가 사이의 갈등을 피코크 룸의 이야기로 남깁니다.
이 일화로 피코크 룸은 단순한 장식 공간을 넘어 예술가의 자존심과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 됩니다.
피코크 룸 속 공작새는 아름다움을 넘어 숨기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의 꼬리를 끝까지 펼친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공작새의 가장 화려한 순간은
숨지 않고, 움츠러들지 않을 때입니다.
자신의 꼬리를
자신감 있게 펼치는 순간입니다.
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색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