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거리마다 울려퍼지는 캐럴,
짙은 어둠을 수 놓는 별빛같은 전구
알록달록 화려한 소품들로 장식된 트리를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깨닫곤 합니다.
“아, 곧 크리스마스구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일을 하려고 애썼던 기억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던 시간들,
유난히 더 설렜던 크리스마스의 약속들까지요.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호랑가시나무 열매입니다. 호랑가시나무는 ‘그리스도의 가시’라는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기독교적 상징성을 지닌 식물입니다.
날카로운 잎은 예수님이 쓰셨던 가시관을 떠올리게 하고, 붉은 열매는 구원을 위해 흘린 피, 곧 희생과 사랑을 상징합니다. 불꽃을 닮은 잎사귀의 형태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드러낸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호랑가시나무는 예수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한 구원을 상징하는 식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달린 나무를 떠올리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단순히 크리스마스를 상징하지만 과거에는 성경 속 이야기를 전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중세에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종교극에서 무대 소품으로 전나무(상록수) 한 그루를 세웠는데,
이 나무가 바로 에덴동산을 상징하는 파라다이스 트리(Paradise Tree)였습니다.
그 나무에는 사과를 달아 ‘금지된 열매, 선악과’를 표현했고, 지역과 전통에 따라 성체를 의미하는 장식이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징은 시간이 흐르며 가정 안으로 들어왔고, 사과는 점차 둥근 오너먼트로 바뀌면서
오늘날의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트리를 떠올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색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초록’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상록수였을까요?
초록은 상록수(Evergreen)를 의미합니다. 사계절 내내 잎을 잃지 않는 나무.
눈이 쌓이고 모든 것이 말라가는 겨울에도 소나무와 전나무는 묵묵히 초록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사람들은 상록수를 생명, 희망, 지속성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이 상징이 기독교 문화와 만나며 상록수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고,
추운 겨울 한가운데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 어둠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 끝나지 않는 사랑과 약속이
트리 한 그루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빨간색은 생명과 존재, 살아 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색입니다.
피의 색이자 심장의 색인 빨강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에서 빨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희생, 그리고 사랑을 상징합니다.
고통의 색이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의 색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빨강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과 온기,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의 색으로 읽힙니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 역시 이 의미 위에 있습니다.
그 원형인 성 니콜라우스(4세기)는 가난한 이웃과 아이들을 위해 이름 없이 나눔을 실천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중세 성화 속 그가 입은 붉은 옷은 권위의 표시가 아니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과 헌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건네는 산타클로스의 레드컬러로 이어졌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눔의 정신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 있는 색들이 어우러진 크리스마스 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던 순간들과
말없이도 전해졌던 마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초록이 알려준 희망처럼 다시 시작할 힘을 얻고,
빨강이 전해준 온기처럼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연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 해를 조용히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