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Jul 26. 2019

 자기만의 방

주부, 바리스타지원하고 합격하기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꼭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 에세이 <자기만의 방>의 구절이다. 여자가 정신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선 정기적인 수입과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로선 진취적인 내용이 담긴 주장이다. 이 책을 읽던 대학생 때는 자기만의 방과 정기적인 수입이 없게 되는 미래 자체를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급격히 닥친 결혼과, 육아. 빠르게 포기한 커리어. 그 가운데서 ‘자기만의 방’이란 건 내게는 공허한 소리였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 갖게 된 ‘우리집’은 일단 작았다. 심지어 신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아이의 물건들로 한 방이 가득 들어차는 통에 ‘내 방’이 생길 여유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사실 상관없기도 했다. 내게는 폭풍같았던 육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방 책상에 앉아있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학생 때부터 ‘방’에서 공부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1년내 가지고 있던 휴대폰도 정지하고, 정말로 엄마 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공부만 했던 수험생시절에도, 나는 집, 내 방이 아닌 집 코앞에 새로 생긴 <이선생독서실>을 들락거리며 공부했었다. 그때는 그 독서실 작은 공간이 나만의 ‘방’ 이었다.     


사회 안에서 부대끼며, 바쁘게, 스스로를 소모만 시키며 숨가쁘게 살던 시절이 지나고 다시금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때는 외동딸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먹이기, 재우기, 씻기기 같은 원초적인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머리를 쓸 일은 도통 없는데, 하루종일 잠 하나 편히 잘 수 없이 신체적으로 고단한 날들이 지속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유치원에 가는 날까지만 기다리자,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다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혼자서만, 육아서가 아닌 스스로가 그저 재미를 위해 읽을 책을 들고 카페에 갔을 때의 충만한 기쁜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10대에는 독서실이 나의 ‘방’이었다면 육아시절에는 카페가 나의 ‘방’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괜찮은 카페는 프렌차이즈 스타벅스였다. 지금은 그 동네에도 새로운 예쁜 동네카페들이 더 많이 들어선데다, 심지어 나는 그곳을 떠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지만 당시에는 정말 내겐 선택의 여지가 얼마 없었다. 그곳은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고,접근성이 좋아 많은 이들이 오갔다. 가게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막 출근시간이 지나고 한숨 돌린 바리스타들의 여유가 느껴졌다.


내부도 만족스러웠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고, 음료의 맛 또한 기복이 없었다. 스타벅스의 인테리어들이 일관적으로 그렇듯 짙은 나무색으로 통일된 느낌이 안정감을 줬다. 그곳에 들르고, 별다른 고민없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아침 등원을 시킬 때부터 가방에 가지고 온 읽을거리를 보고. 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전업주부가 거의 매일같이 프렌차이즈 카페로 ‘출근’ 하는 것에 대해 질타를 할수도 있다. 가끔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엄마들 가운데는 “매일 커피를 사마셔? 돈많다~”며 은근한 비웃음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술이나 커피 중에 하나는 살 수 있다. 그게 당시나 지금에나 나의 생각이다.      


문제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낭비라는 의견이나, 아니면 커피 맛이 어느날 갑자기 형편없어졌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 언제나 문제는 내부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문제는 나였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이라는, 대학생 때 미시경제과목에서나 들었던 단어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언제나 완벽한 온도와 습도를 갖춘 그 ‘방’에서, 날마다 똑같은 맛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내게 완벽한 루틴이 아니었다. 시작은 늘 당연하게 시키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기가 점점 더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그 음료에 질리는 정도만큼, 나는 그 공간과 나만의 짧은 시간에도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다. 늘 바쁜 사람들만이 그곳에 규칙적으로 오갔다. 나처럼 편안한 옷차림에 책을 읽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문득 오랫동안 보아왔던 바리스타에게도 시선이 머물렀다. 그는 내가 단골이 된 이후에야 입사했는데, 처음의 어설펐던 모습이 기억나는 그는 이제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어느 오전,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를 시킨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바리스타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방향성이 진상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