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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an 13. 2020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상에서 마주치는 진상이라는 유령들


다시 돌아온 ‘주부생활’은 단조롭다. 단점 역시 수없이 들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단조로움’이 내게 잘 맞는 이유 중 하나는 어지간해서는 내 마음을 흔들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에게 지나치게 감동하고 사람으로 인해 지나치게 상처받는 내게, 사람을 자주 만나는 일이 잘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것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만나는 사람이 극히 제한된 주부 생활에서도, 내가 고객이 되는 일은 수없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매일 가다시피하는 마트, 하교 후 아이의 간식을 위해 들르는 카페나 아이스크림 가게, 편의점 등. 나의 경우에는 예전에도 딱히 맘먹고 진상을 부린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서비스직을 경험하고 나서는 더 조심을 하게 된다.     


하루는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 학교 앞 아이스크림가게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더위로 인한 인파의 몰림을 매장에서는 예측하지 못했던지, 한명의 알바가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뿐 아니라 빙수와 커피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는 그 체인점의 특성상, 알바 혼자 주문받기와 제조까지 하는 건 벅차보였다. 그럼에는 그는 차분하게 주문을 받은 후 음료나 빙수, 아이스크림을 제공하고나서 돌아와서 다시 주문받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침착한 응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자 나도 지치기는 했다. 예전같았으면 이정도에서는 짜증을 냈을 법하지 않나 생각했다. 실제로 뒤의 손님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약간의 군중심리 때문인지, 땀을 잔뜩 흘리고 덥다던 아이도 내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여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이를 이렇게 타일렀다.


 “한분이 주문도 받고 만들기도 하시니까 오래 거릴 수밖에 없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 바쁜 일도 없는데 그냥 차분하게 기다리자. 안도 시원하고 좋잖아”     


내 목소리를 들은 뒷 고객들도 잠잠해졌다. 너무 서비스직 입장에서 생각한 말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잇겠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서 그 알바가 뭘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는게 사실아닌가.      


마침 그날 저녁, 그 매장이 속해있는 푸드체인의 어플에서 해당매장이용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팝업이 떴고, 나는 ‘해줄말’ 항목에 ‘때이른 더위에 손님이 몰리는데 응대하는 직원의 수가 적어서 힘들어 보였다.’는 말을 적었다. 내가 일하면서 느꼈던 대로, 고객의 불편은 대부분 알바 탓이 아니라 본사의 방침 탓이다. 내 불만은 그쪽에 말하면 된다. 바꿀 힘이 없다는걸 잘 알면서도 그에게 불만을 터뜨리면 그건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진상이다.     

 

본사의 방침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을 때 “점장 나오라 그래”, “매니저 나오라 그래” 라고 책임자를 소환하는 것은 우리모두가  책임이 알바에게 있지않음을 이미 알고있음을 뜻한다. 화풀이의 대상이 그 화가 행해야할 곳이 아닌 ‘약한’곳으로 향할때 그건 분명 정당한 권리행사가 아닌 학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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