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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Dec 18. 2019

손님은 왕이 아니다

어떤 문구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야 한다

클럽에 입장하던 고객들에게 입장료를 걷고 있는 단순업무를 하는 금발머리여사원이 있었다. 그녀가 그날도 밀려드는 고객들로부터 돈을 받고 있는데, 한 중년남자고객이 자신이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어안이 벙벙한 그녀에게 건네는 그의 말이 가관이다.      


“이거 중요한거니까 절대 잃어버리지말게. 잃어버리면 큰일날줄 알아”     


그녀를 비롯한 앞뒤의 고객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역시도 분노로 가득차려는 그때, 남자가 이어 그녀에게 돈다발을 건넨다. 이제야 그의 행동이 납득 가능해진다.      


영화 <그린북>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알바에게 업무 외 일을, 더구나 업무시간에 부탁한다는 것은 분명히 ‘상식 외’의 일이다. 특별한 부탁에는 특별한 대가가 따르는 게 상식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쯤 알바가 들어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근무를 하면서 몇 번 특이한 부탁을 받아 곤란해졌던 일이 있다.      


주말에 네 살 정도 된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아이는 소란스러웠고, 통제가 불가능해보였다. 나도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그들이 안쓰러워보였다. 부모 중 엄마가 살짝 찌푸린 얼굴로 내게 다가오기에, 나는 아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려는건줄 알았다. 그런데 그 엄마의 말은 내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저희 애가 자꾸 만지고 싶어해서요. 저것 좀 어디 치워주세요. 뒤로 빼놔 주든지.”  

   

그가 뒤로 치워달라고 한 것은 화이트데이 특별상품으로 나온 유리병에 든 사탕이었다. 핑크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그 유리병사탕은 시즌이 지나면 바로 재고가 되는 거여서, 특별히 계산대 옆에 두고 판매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진열상품을 만지고 싶어한다’는 상황이 어떻게 ‘죄송하다’, 혹은 ‘금방 나가겠다’가 아닌 ‘치워달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결국 사탕은 뒤로 빼놓았고, 그 부부는 자기들이 언제 나간다는 말도 하지 않아 그 사탕들은 반나절이 넘도록 뒤쪽에 놓여있었다.      


그런가하면, 이런 적도 있었다.


“중요한 사람이 오는데 주문을 스스로 하기 불편하시니까 내가 말한 인상착의의 사람이 오면 커피랑 빵을 좀 자리로 가져다 줄 수 있어요?”     


바쁜 매장에서 그 같은 일은 정말 다른 고객에게 막대한 해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기에 거절했다.   

   

이런 요구를 당당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고객으로 왔으니 편의를 봐줘야지. 고객은 왕이다.’라는 마인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가게마다 붙어있기도 하고, 광고에도 나왔다고 하는 ‘손님이 왕이다’는 말은, 그 말이 생겼던 당시에는 혁신적인 마케팅이었다.  ‘손님은 왕이다.’는 말을 기업 경영인으로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 백화점의 창시자인 워너메이커였다. 이 말은 원래 스위스 태생의 호텔 경영인인 세자르 리츠(1850~1918)가 실제로 왕족이나 귀족들을 상대하면서 만든 말인데, 워너메이커는 고객을 왕으로 끌어 올리면서 백화점을 이용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었다. 고객들은 백화점 직원들에게 왕으로서 대접을 받는 느낌을 받는 둥 더 기분좋게 소비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 처음 생긴 백화점 역시 왕족에 버금가는 부를 축적한 이들이 주요고객, 다시 말해 그만큼 많이 쓰러 온 이들이었을 것이다.      


서비스직들이 진상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흔히 하는 말이 ‘커피 한잔 마시면서 갑질이냐’ 이다. 이 말은 가격으로 고객의 태도를 나누는 것처럼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사실 훌륭한 서비스를 포함한 상품의 경우 서비스비용을 가격에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가격이 몇배로 올라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갑질을 자행하는 곳은 오히려 호텔, 고급항공보다 패스트푸드점, 카페, 편의점이다.      


게다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마인드는 이미 시대역행적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에 거부감이 없던 시대는 한물갔다. 당신은 아직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아이들은 맞으면서 커야한다’ 같은 말들에 공감하는가. 어떤 문구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야 한다.      


다시 영화 <그린북>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린북>은 1962년의 이야기다. 심지어 흑인이 노예이던 시절에도, 알바에게 특별한 주문을 하려고 따로 돈을 쥐어준 게 매너다. 낡은 문구, 낡은 생각, 낡은 매너는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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