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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Nov 21. 2019

양세종같은 유명배우는 못되겠지만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는 죽었다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는다. 주말에는 더 그렇다. 이유는 별거 없다. 집에 있는것보다 밖으로 나돌아다니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바를 하는 동안에는 쉬는 날만 되면 집에만 있고싶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체력이 안되서 주말이면 집소파에 눌러붙어 리모콘과만 스킨십을 주고받는 아빠가 된건가 싶어 우울해졌다.


사실 그럴만한 '아빠나이'가 된게 맞다. '역시 삼십대에는 일을 하면 주말이 너무 힘들구나, 아이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주말마다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던 것도 다 내가 전업주부라 가능했던거구나. 남편은 참 힘들었겠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티비 앞에만 축 늘어져있던 어느 날, 커피프렌즈라는 프로그램을 보게됐다.


tvn의 <커피프렌즈>는, 제주도의 한 감귤농장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수익금을 전액기부하는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유연석, 손호준, 최지우, 양세종, 조재윤 같은 유명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엑소 세훈, 워너원 강다니엘 같은 유명 아이돌들이 번갈아 알바로 출연하며 일을 도왔다. 카페에 대한 내용이라 자연히 채널고정을 하게되었다.


“그래 뒤에서는 저렇게 설거지할게 많지. 저게 다 환경보호를 위한 머그컵 사용 때문이지.”


“그래 주문이 몰리면 저렇게 힘들지. 차례대로 해야하는데 한번 꼬이면 답없지.”


온갖 잘난척(?)을 하며 카페 업무에 대해 통달한척, 엄청 힘든 일을 하는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를 의심케 하는 말 한마디가 텔레비전 속에서 흘러나왔다.


“빵남은거 있어요? 빵을 드시고싶어하시는거같아서.........”


<빵을 드시고싶어하시는것도 아니고 드시고싶어하시는 것 같은건 뭘까요?>


커피프렌즈 카페에서는 빵을 이용한 메뉴들도 판매중이어서 빵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 메뉴가 잘 팔려서 빵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한 고객들이 들어오면서 자기들끼리 빵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양세종 배우가 그걸 캐치해서 주방측에 미리 물어본 것이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닌데, 뜬금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빵을 드시고싶어하시기는 개뿔? 말을 해야 알지 그걸 알바가 어떻게 알아????!!"



지나친 감정이입을 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카페에서 주문을 받다보면 그런것까지 바라는 고객이 참 많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가서 화풀이 하는 격이다. )흔하게는 문을 열고 걸어오는 도중에 자기들끼리 메뉴를 속삭이며 정하고는 내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주세요” 하는 경우다. 출입문과 계산대까지의 거리가 최소 2미터 이상은 되는데 그걸 내가 알아듣고 외워뒀다가 주문을 받아줘야 하나.


물론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양세종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본업이 아닌 예능 속 카페 업무도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프로페셔널 그 자체다. 어쩌면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과 얼굴을 보면 알만한 유명 배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건, 평범한 다수에게는 비극일 수 있다.


이런건 알바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아들이 나쁜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의 요구대로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다주기위해 어머니심장을 들고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때 어머니심장이 “아들아 괜찮니?” 라고 말했다거나,


<완벽하고 장엄한 모성애의 잣대를 엄마에게 들이대는 것>


가족이 항아리에 우유를 담아두고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집에와서 그 우유를 마시려고 하니 기르던 개가 맹렬하게 짖다가 그 항아리를 넘어뜨리고 대신 우유를 몽땅 마셔버렸는데, 알고보니 그 안에 뱀이 독을 뱉어서 개가 그걸 알곤 대신 마시고 죽어버린거였다거나,


<주인만을 위한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선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불쌍한 강아지>


하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상대가 누구든, 그가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간에 엄중한 프로의 세계를 추구하느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선택이다. 모두에게 완벽함을 기대하는 건 투철한 직업정신에 대한 강요로 이어지고, 그 강요는 나 때는 말이야 라는 꼰대같은 마음으로 이어진다.


"라떼는말이야(latte is horse)" 라는 말이 대유행중이다.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재밌게 바꾼 표현인데, 이 말을 처음 영어로 접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이 언어유희의 의미를 이해하며 (비)웃을 수 있다는 것은, '나때는 말이야' 라는 말이 이미 죽은 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마도 '나때는 말이야'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대부분 '내가 이만큼 고생을 했다', '내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 같은 내용이 대부분으로, 완벽한 직장인상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다. 이 말이 그렇게 유머로 소비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한 완벽한 직장인상의 투영이 먹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따뜻한 엄마, 곁에 있어주는 강아지, 워라벨을 추구하면서도 할일은 해내는 직장인, 정상적으로 업무만 잘 처리하는 알바여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나는 카페 알바가 문앞에서부터 생각했던 내가 원하는 메뉴를 찰떡같이 알아채지 못해도, 정말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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