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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an 13. 2020

로부스터종이 될수밖에 없었던 사정

주부들은 왜 하는 생각이 똑같아?

카페 일은 커피처럼 우아하지 않으며 디저트처럼 달콤하지도 않다. '백룸'이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제빙기의 굳어있는 얼음 패대기쳐서 깨서 운반하기, 각종 부재료 운반,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엄청나게 늘어난 머그컵과 접시 설겆이 같은 '궂은 일'이 잔뜩이다.


게다가 계산대에서 벌어지는 기초적인 업무조차 처음엔 너무 벅찼다. 스타벅스의 복잡한 결제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초반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적어 계산대만 줄곧 잡고 있으면서는 '계산과 설겆이만 하니까 내가 바리스타가 된 건지 뭔지 알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곤했다.


그나마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은 마스트레나기계에 에스프레소 원두를 채우고, 오늘의 커피를 내릴 원두를 계량하고 그라인딩할때였다. 싱싱한 원두의 오일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스타벅스가 사용하는 원두는 아라비카원두라고 한다. 커피원두는 아라비카, 로부스터, 리베리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중 최고로 치는 원두는 단연 아라비카다. 스타벅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는 단연코 샷을 물에 섞어내는 '아메리카노'인데,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특유의 진한 맛을 높이 사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 진한 맛의 비결은 사용하는 원두인 `에스프레소 로스트`에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재배한 최고급 아라비카 원두를 선별해 스타벅스 커피 장인들의 로스팅 기술로 볶아내기 때문에 캐러멜 같은 풍미와 깊은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커피를 사랑한지 오래되었지만 커피에 대한 지식은 일천했던 나는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비로소 원두의 종류 같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알고나니 길거리 편의점 같은 곳에 내걸린 현수막에조차 <100%아라비카원두를 사용합니다> 같은 문구가 많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라비카원두는 평균20도의 기온, 600~2000mm이상의 강우량에서만 재배되는 까다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로부스터는 열악한 환경과 병충해에도 강력해 너른 환경에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로부스터종은 훨씬 다양한 곳에서 재배할 수 있지만 세계 원두 생산량의 6-70%는 아라비카가 차지할만큼 로부스터종을 선호하는 이는 적다.


문득 원두가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따라 다를수밖에 없다는 게 사람과도 퍽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점들을 친구에게 얘기해주었더니 친구가 시니컬하게 답했다.


”커피원두도 서열 매겨지는게 인간이랑 똑같네.”


친구의 답에 수긍이 가면서, 결국 난 최고를 지향하는 경쟁에서 환경적으로 밀려난 로부스터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에 지원하려고 한다는 말을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했을 때, 반응은 다양했다. 재밌는 점은 아이가 있는 지인과 없는 지인의 반응이 확실히 갈렸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는 전업주부인 지인들은 전부 "괜찮겠어?라고 걱정하면서도 일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일은 몇시간이나 해야하는지, 주부를 배려해주는지, 지원절차나 합격기준 같은 건 어떤지를 꽤나 자세히 물어오던 이 중에서는 스타벅스에 지원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내가 참고했다는 바리스타 인강 사이트 주소를 받아간 이도 있었다.


반면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알고지냈던 이들 중 아직 아이가 없는 이들은 주로 '왜하필 뜬금없이 바리스타냐'는 반응이었다. 한 친구는 직언으로 "왜 주부들이 한다는걸 보면 죄다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방과후교사 같은 파트타임, 천편일률적인 것들인지 모르겠어. 그 직업들이 이상하다는건 아니지만, 능력있던 여자들이 결혼하고나면 생각하는 직업들이 다 똑같아지는 것 같아. 그게 니가 진정으로 해보고 싶은,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 맞니?"라는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사실 결혼전의 나는 서비스직 경험이 일천한데다 아르바이트조차 과외 외에는 해본적이 없었기에 친구의 우려는 타당했다.


하지만 주부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주부의 생활은 전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스케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최상의 해발고도가, 최적의 온도가 주어질 수 없다. 절대로 아라비카종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정말 놓칠 수 없는 커리어를, 계획적인 육아와 병행해서 훌륭하게 운용하고 있는 수많은 훌륭한 워킹맘들은 물론 예외겠지만. 나처럼 이미 커리어를 놓쳐버린 사람이라고, 잘난 워킹맘이 될 수 없으면 아무것에도 도전할수 없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모두가 풀타임워커로만 살수는 없다. 위의 친구가 말한 주부들이 생각하는 ‘천편일률적’이라는 직업들은 하나같이 시간을 그나마 분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직업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무엇보다 매력적일 수 있다.


로부스터종은 특유의 탄맛으로 베트남커피 등에 많이 사용되며, 선호하는 매니아층이 존재한다고 한다. ‘취향을 안목으로 착각하지말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서도 유추적용이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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