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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an 15. 2020

장유유서가 갑질을 만든다

무엇이 서비스직을 ‘을’로 만드는가-1


진상이 많은 건 장유유서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엄마아빠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조심스럽다. 하지만 서비스직에서 일해본 이들은 대부분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만큼 중년이상 고객들이 전체진상고객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나에게 난생처음으로 면전에서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듣게 한 이도, 이를 쑤시며 눈을 마주친 이도, 처음 보는 사이에 일좀 똑바로 하라며 다그친 이도 다 아저씨였다. 물론 내게 잘해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도 중년남성고객이었고 매장 모든 파트너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던 젠틀한 고객도 나이지긋한 할머니셨다. 그렇기에 일반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많은 고객들이 무례한 경우가 많은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왜 진상중에는 중년이상 고객이 많을까. 그 이유에는 아마도 그릇된 장유유서문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 아동작가 전이수가 방송에서 함께 출연한 어른 출연자들과 반말로 대화를 나눠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해명으로 이수 군은 ”어린이집 다닐 때 선생님이 친구들을 때리고 명령하고 윽박질러서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고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느꼈다”라면서 “내가 느끼는 마음의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제인가 깨달았다.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존중은 요를 붙여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벽이 없어야 생겨난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예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음 좋겠다 하는 것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다. 난 노력하고 있다. 마음에 있는 이쁜 말을 나는 하고 싶다”고 소신을 밝혀 화제가 됐다. 방송에서 이수 군의 어머니는 “어린이집에서 수직관계에 상처를 받고 공동육아를 하게 됐다. 거기서는 수평관계다. 감정표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편한 대로 표현하고 말하라고 했다. 이수는 이후에 조금씩 존댓말도 자연스럽게 하더라”고 아들의 반말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언어는 사고를 구성한다. 존댓말을 하는 것 자체로 이미 수직관계가 형성된다. 때문에 평등하고 자유로운 대화가 처음부터 오갈 수 없다는 이수 군의 생각은 한국사회에서 시기상조일수는 있어도 일견 타당해보인다.


한글은 존댓말이 있는 언어다. 수직관계에서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하도록 태어날때부터 교육되고, 특히 나이가 더 많은 경우에는 여지없이 수직관계의 그것을 적용해 존댓말을 한다.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나이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주요한 정보이며, 한국에서는 한두살 차이에도 서로 민감하다.


내 아이의 경우도 이런 나이 몇살차이에 따른 예민함을 줄여보고자 여러연령대의 아이들이 한 반이 되는 유치원을 일부러 보냈는데, 오히려 그 곳에서 더욱 격렬한 예의범절을 배워왔다. 여섯살짜리 유치원생이 일곱살 유치원생에게 형님이라고 존대하며 배꼽인사를 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찜찜함이 잊히지 않는다. 그 모습에 대해 선생님과의 상담시간에 대화를 나눴는데 선생님은 예의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확실히 한국에서는 아직도 나이가 벼슬이다. 장유유서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공경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것에 있다.


내가 대학생때의 일이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대학생이었다. 당연히 시험은 벼락치기였다. 행정법 시험 전날이었나.(법대도 아닌 나는 행정법수업은 대체 왜 들어서 그 고생을 했나) 밀린 공부 때문에 아예 밤을 꼴딱 새운 나는 프린트들을 주섬주섬 챙겨 지하철역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마침 자리가 있었고, -노약자석도 아니었다- 거기앉아 프린트를 보고있을거라 생각한 내 자신은 금새 사라지고 나는 미친듯이 잠을 잤다. 직감적으로 도착할 역 즈음이되어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을 때는 목이 아예 뒤로 젖혀져 있었다. 일어서는데  목이 쑤실 정도였다. 질질 흐른 침과 널부러진 짐들을 수습하면서 버스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누가 거칠게 어깨를 후려쳤다. 뭐물건이라도 주워주려나 싶어 휙 돌아봤는데, 말로 싸대기를 맞았다.


”너 그렇게 살지마.”


그 말을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중년이었다. 얼떨떨한 내가 무슨 대답이라도 하기도 전에 그는 연이어 폭언을 쏟아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내가 자는척을하는게 너무 고까웠고, 니가 안잤다는 걸 나는 다 알고, 그렇기에 지금 너의 놀라는 표정이 너무 가증스럽다. 너도 늙으면 꼭 그렇게당해보라는 거였다. 아직 어린 대학생이었던 나는 분명히 정말 자느라 몰랐던 건 맞는데, 그래도 나이가 많은 분에게 자리 양보를 못한건 잘못인가 싶어서 자책까지 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고객과 서비스직직원, 갑과 을로 정의되는 무수히 많은 이유 중에 하나로 나는 장유유서를 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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