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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낯선 '썸' 타기

반려견입양은 저도 처음입니다

by Leeyoungjoo

"바카, 입양 됐나요?"


전업주부로 산 지 5년이 넘어가던 무렵, '카톡으로 썸타기'란 그야말로 남의 일이었던 나는 '카톡' 한 줄을 보내놓고 하염없이 '1'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세에 비해 조금 일찍 결혼한 탓(?)에 숱한 미혼 친구들의 연애상담을 해주면서, "그깟 1이 없어지고말고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며 했던 핀잔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새해맞이 버킷리스트의 일종 같은 기분으로 가볍게 떠올렸던 '반려견입양'은, '이왕이면 유기견입양이 좋겠다'는데 가족들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여러가지 사이트를 통해 가슴아픈 유기견들의 사진과 사연을 살펴보면서 며칠 전만 해도 생각도 없던 '입양'은 '사명'이 되었다. 몇백마리가 넘는 개들을 봤고, 그 중 내 마음에 꼭 드는 아이가 있었다. 어리고 예쁜 암컷 말티즈. 그 아이의 이름이 '바카'였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봐놓곤, 한번 마음을 정한 나는 '바카가 아니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심정이 되어 애가 탔다. 이건 마치 "세상의 반이 남자인데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구냐"며 친구들을 채근하던 스스로를 또 한번 비웃게 되는 꼴이었다. 세상의 절반이 남자라고, 세상에 도움을 기다리는 개들은 너무 많다고, 같은 생각들은 그 순간 들지 않았다. 아무튼 1은 진짜 도대체 언제 없어지는거냐. 하는 생각을 하며 카톡창을 한번 열었다 닫고, 바카사진을 한번 열었다 닫기를 무한반복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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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사라졌다.

!!!!!!!!!!!


"아직 있어요"


절박하게 기다렸던 나에겐 너무 반가운 한마디, 나는 '답장은 15분 후에 해라'는 케케묵은 밀당제1법칙 따위는 잊은 채 칼답장을 했다.


"제가 입양할 수 있을까요?"


지금와서 고백이지만, 유기견입양을 결정한 후 나는 '내가 키워주는 사람, 내가 선택해주겠다'는 생각에 무의식중에 도덕적 자부심같은걸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입양절차에 발을 담그자마자, 갑자기 '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는 입양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유기견센터 봉사자에게, 내가 이 아이(바카)를 기르기에 적합한 견주임을 어필해야만 했다. 다음에 도착한 카톡답장은 확실히 내가 '을'이 되었다는 선고와 같았다.


"바카는 경쟁자가 많아요. 개 키워보신적은 있으신가요?"


경쟁자가 많다니, ㅠㅠ 제대로 답해야했다.


"키워본적은 없구요. 잠깐 맡아서 기르거나 한적은 있어요. 하지만 개를 잘 다루고 익숙해요."

(입양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를 길러본적이 있는 견주를 선호한다. 개 키우는 일이 마냥 핑크빛은 아니고 생각보다 책임질 일도 신경쓸 일도 많기 때문이겠지)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세요?"

"5살 딸이 하나 있어요. 세가족입니다."


(어린 자녀가 있을시에도 입양보내기를 꺼린다. 어린 자녀와 개가 서로 어울리기 힘들어 파양되는 경우가 많고, 어린 아이와 개는 친구가 될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성가신 존재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


"바카는 이 가정에 힘들 수 있습니다."


건조한 말투, 청천벽력같은 대답. 솔직히 앞에서 밀당의 긴장감이 어쩌고했어도, 사실 나 처녀시절에 거절당해본 경험, 별로 없었다. 충격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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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바카는 성격이 상당히 얌전해서 센터에서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애교있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결코 아니어서,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사랑받기 힘들 거라는 걱정이 그 이유였다.

솔직히 말해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원하는 아이가 이미 입양이 된 것도 아니고, 나랑 맞지가 않을 것 같아 우리집에 보내줄 수가 없다니. 약간 김이 새는 것 같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가려는 참에, 봉사자는 다시 메세지를 보내왔다.


"카페에 한번 가보세요. 다른 아이들도 많이 있으니 살펴보세요."


카페는 이미 '정독' 했었다. 그 중에 눈에 들어온 아이가 바카였던 건데, 이유는 생김새가 예쁘고 몸집이 작은 순종 말티즈였기 때문이라는 것, 인정한다.


사실 반려견을 맞이하기로 하면서 유기견입양을 결정했을 때, 이미 작고 깜찍한 외모를 우선순위에 두지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유기견 중에도 찾아보면 예쁘고 깜찍한 애들도 당연히 많을 거라는건 알지만 -사실 개 중에 제대로 씻겨놓으면 안예쁜 외모의 아이를 찾기가 더 힘들다- 어쨌든 개를 상품취급하는 일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유기견입양을 하려는 자에게, '외모를 보고 고른다'는 건 어쩐지 죄의식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아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정이 가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아까처럼 확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봉사자가 몇마리를 콕집어 추천해주었다.


"월령이도 예쁘고 희망이도 귀여워요. 크리스도 가족들과 잘 맞으실거예요."


외모만 보고 아이를 골랐던 것에 죄의식을 갖고 있던 중에, 예쁘고 귀엽다는 설명보다는 가족들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설명에 내가 꽂힌 건 당연지사, 나는 크리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크리스 성격이 어떻길래요?"

"비열해요. ㅋㅋ 큰애들한테는 쫄고, 작은애들한테는 컹컹짖어요. 귀여운 성격이죠. 따님이랑 소꿉놀이할만큼 사람도 잘 따르고요."


대체로 조금 짖궂고 눈치도 있고 활발하다는 설명. 사실 개를 가족으로 맞이할 생각을 했을 때, 조금 얌전한 아이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긴 하지만 봉사자님의 말대로 아이와 함께 기르려면 사람에게 살가운 아이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와서 다른 아이를 찾기엔 크리스에게 너무 미안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아마 '눈에 밟힌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크리스로 할게요."


"네, 결정되셨어요. 입양원서 써서 보내주세요. 집 사진 서너장과 함께요."

"넹, 원서 낸 후 번복되는건 아니겠죠? 크리스 확실한거죠?"


결정 후에도 나는 '확답'을 받지 못해 안달이었다. 내 성격이 급한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언제부터 크리스만 보였다고, 하여튼 나는 예나 지금이나 확실히 '금사빠'다.


마치 지금 작성해내지 않으면 크리스를 뺏기기라도 하는듯, 크리스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듯, 나는 단숨에 입양지원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입양원서는 생각보다 길다. 너댓장이 넘었던 것 같다. 꽤 길게 입양의 이유와 입양에 대한 생각을 묻는 주관식항목도 있었다. 흡사 입사지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기분이었지만 나는 왕년에 취직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십수번 이상 썼던 사람으로 이 쯤은 자신있었다.


'운명'


'반려견 선택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던 것 같다. 입양원서를 작성하기 전에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거였다. 반려견 선택을 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외모? 집안에서의 효용가치? 이런건 겨울코트를 고를때 중요한 점들이 아닐까. 반려견을 들인다는건 상품을 들이는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얼떨결에, 그렇지만 확실한 감정으로 크리스를 들이게 된건 우리의 '운명'이 아니엇을까. 꽤나 긴 입양원서를 작성하는 건 내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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