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를 소개합니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이런 질문을 더 이상 받을 일이 없는 유부녀지만, 그래도! 심지어 유부녀에게도!(그래 유부남도!) 이상형이란 있게 마련이다. '이상형'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대개 먼저 외모적인 조건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나만 그런거면 어쩌지) 내가 과연 이상형과 결혼했는가는 논외로 하고 (이건 엄연히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니까^^) 운명처럼 만나게 된 크리스가 과연 내 이상형이었는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견주가 되기 전 나의 '반려견이상형'은, 다리가 짧고 머리가 큰 뚱뚱한 체격의 아이들이었다. 이를테면 웰시코기같은? 특히 다른건 몰라도 막연히 얼굴만은 컸으면 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흔히 이쁜 비율이라고 하는 조그만 얼굴과 긴 다리는 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개라면 모름지기 사람과는 다르게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짤막하게 뒤뚱뒤뚱걷는 맛이 있는게 미견이지! 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반려견이상형'을 갖고 있던 나는, 반려견을 입양하는데 있어서도 이상형과 맺어지는데 실패하게 된다. (앗...ㅎㅎ)
크리스는 말티푸다. 말티푸는 말티즈와 푸들의 믹스견으로, 요즘 유럽과 미국 같은 '반려견 선진국'에서 인기있는 품종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봤다 진짜다) 말티푸라고 해서 다 똑같은건 아니지만 대부분 말티즈의 작고 귀여운 머리와 푸들의 길고 늘씬한 몸통을 갖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크리스는 완전 '베이글녀', 아니 수컷이니까 '베이글남' 이었을 것이다. 그런 크리스를 두고 "사실은 외모는 내 취향은 아니다"고 하기는 미안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어쩌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엄청 예뻐졌지만 처음 입양을 하러 갔을 때는 비쩍 마른 몸에 눈물자국이 심해서 내 실망감은 더 컸었다. 그 모습은 차차 공개하기로 하고, 일단은 예뻐진 크리스의 모습부터!!
<청순한 얼굴의 크리스>
<몸통이 좀 길고 늘씬한 크리스>
-첫만남의 충격
어릴 때 <빨간머리앤>이라는 책을 아주 좋아했었다. 책의 주인공인 앤은 그린게이블즈 마을의 남매에게 입양된 여자아이인데, 입양할 때 원했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튼튼한' 남자아이가 아닌데다, 생김새도 전혀 예쁘지 않아서 처음에 밉상을 샀던 아이다. 나는 유기견입양을 사람을 입양하는 일에 비견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사람은 결코 입양해서 잘 키울수 있을거란 자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를 입양한 후 이 책을 떠올렸던 건 어릴 때 읽었던 책 속의 깡마르고 겁에 질려 되려 성질을 부리는 앤의 모습이 우리 가족과 처음 만났던 날의 크리스와 몹시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남편 퇴근 후 함께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기에 우리가 센터에 방문하기를 원하는 시간이면 이미 봉사자들도 전부 퇴근을 하게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센터에 연계된 동물병원으로 크리스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나는 마치 천사나 된듯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후에야 도착한 동물병원의 모습은 내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병원에는 수의사 선생님과 크리스가 단둘이 남아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고, 밤늦게 혼자 병원에 있어 무서웠는지 크리스는 무지 예민하고 불안정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 곳에는 개냄새가 진동을 했고-동물병원이니까 당연했겠지-크리스는 낯선 우리를 보고 컹컹짖어댔는데 목청도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러 설명을 듣고, 반려동물인식칩을 시술했는데 그 순간 '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심했다. 아이에게선 여전히 냄새가 났고-나는 은연중에 새 주인을 맞이하기 전 깨끗하게 목욕한 향기나는 아이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잊어선 안된다. 나는 예쁜 새 '물건'을 구입한게 아니라, 힘든 삶에서 봉사자들의 노고로 구조된 '생명'을 입양하는 것이라는걸-차를 엄청 싫어하는 것처럼 불안정하게 짖어댔다. 사진으로만 보면서 정을 들이려고 애썼던 아이의 얼굴을 실제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크리스는 얼굴도 잘 보여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차에서 별 말이 없었다. 상상과는 아주 달랐던 입양첫날의 풍경, 이상형과는 완전 달랐던 새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돌아와 모두가 집에서 함께한 크리스와의 첫날밤-다른 가족들은 모르겠지만- 크리스는 밤새 울었고 나는 밤새 걱정으로 뒤척였다. 마치 그린게이블즈의 그날밤 앤과 마릴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