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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그대여

분리불안극복하기

by Leeyoungjoo

"개를 입양하기로 했어."


단호한, 그리고 다소 뜬금없는 내 결심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딱 봐도 개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 지인들은 "쯔쯔. 그거 쉬운 일 아니다."는 걱정에서부터 "너 요즘 뭐 힘든 일 있냐"는 진심어린(?) 우려, 그리고 "실패할 듯"이라는 악담(?)까지 다양했다.


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던 나는 주변의 애견인(!)들에게 내 포부를 밝혔고, 대부분 환영을 해주는 가운데 한 친구의 마뜩찮은 반응은 나를 영 찜찜하게 했다.


"왜.......? 그동안 개 이야기 한적 없잖아? 개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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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개 좋아하는데? ㅜㅜ

초등학교때부터 나중에 어른되서 성공하면 유기견센터 키우는게 꿈이었다고. 그걸 말해줘야하나? 내가 면접보냐? 좀 그냥 응원해주면 안되냐?


또 온갖 꼬인 생각을 하면서 시무룩해진 나는 잘키우는 모습을 진짜 보여주고 말겠다!!!!!!는 포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친구의 의구심 가득한 반응은 '개 키우는 걸 정말 잘할 수 있겠는지, 혹여나 한번 상처받은 개가 또 상처받게 되는건 아닌지'에 대한 애견인으로서의 걱정이었다는 것을.


실제로 개 키우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애 키우는것보다는 당연히 쉬움.)

개 키우는것의 가장 곤혹스러웠던 점은, 뭐니뭐니해도 분리불안을 극복하는 거였다. 갓 태어난 강아지를 키워본일이 없어서 개들이 원래 이런지, 아니면 유기견이라 더 심한 건지 모르겠지만 크리스의 경우 처음 집에와서 며칠간 내 무릎에서 아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잠도 안잤다. 진짜로 약 3일 정도, 크리스는 아예 잠을 못잤다. 무릎에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내가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후닥닥 잠에서 깨어나 나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또 버려질까 싶어서겠지라는 짐작에 마음이 짠해지다가도, 한편으론 엄청나게 걱정이 됐다.


와, 나 어쩌냐. 이제 앞으로 화장실도 허락맡고 가야하고, 외출은 꿈도 못꾸는거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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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를 입양한건 작년 12월 20일의 일로, 때는 바야흐로 연말이기까지 했다. 나야 주부가 된 뒤로 자의적타의적 왕따 비슷하게 되어버린지 오래라 연말 모임이 엄청나고 이런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밖엔 나가야 했다. 당장 동생의 생일(12월 23일)모임도 예정되어있었다. 나는, 나가야했다!!!


먼저, 강아지가 주인만 하루종일 졸졸 쫓아다니는 것의 원인을 알기 위해 폭풍검색을 해보았고-이 과정에서 갓형욱의 존재도 알게된다.-이것이 '분리불안'이라고 부르는, 유기견들에게서는 더 흔한 증세임을 알게되었다. 이게 나를 인생 최대의 절망에 빠트린바 있는 ㅋㅋㅋ 아기의 등센서와 비슷한 건가? 음. 그렇다면.......



끝도 있겠네!!!


등센서가 유별났던 딸아이도 이제는 무럭무럭자라서 개를 안고다닐만큼 컸는데, 뭐 개 분리불안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는 나름의 분리불안 교정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행동교정영상에서 본대로, 문을 열고 나가서 현관앞에 1분 서 있다 오기, 2분 서 있다 오기로 시작했다. 다행히도, 크리스는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금방 보여주었다. 아, 처음 괜찮아지기 시작한건 '졸음' 님 덕분이었다. 사나흘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던 크리스는-그래서 더 날카로웠던 것 같다-닷새째 되는 날부터 갑자기 폭풍수면을 시작했고, 이때 내가 나가도 고개도 못가누는 지경에 이르러 숙면을 취했다.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는 듯했다. 그렇게 또 다시 사나흘 크리스가 잠만 자는 동안을 이용해 나는 현관앞에 나갔다오기를 반복했고, 약간의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동생의 생일잔치는 결국 집에서 했다. 하하하.

아, 연말파티도. ㅋㅋㅋ

새해가 올 때까지 외출을 못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분명히 지나간다. 내가 운이 좋았겠지만, 크리스의 '극도의 분리불안단계'는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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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그만자.jpg <일어나라, 크리스> 내리 잠만 자던 크리스는 이때 당시 너무 꼬질해서 과도한 포샵만이 살길이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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