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Mar 04. 2020

카페알바이야기-미들근무편

세상일은 이거 아니면 저거지, 둘다란 없다는 진리

뭐든 부딪혀보면 상상과는 다를 때가 많다. 나는 전업주부일과 병행이 가능한 파트타임근로자로서 오픈근무가 완벽한 답이 되어줄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들근무가 그 답에 가장 가까웠다.


오픈근무는 아침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게 큰 손실이었다. 내가 대충(!) 해놓은 밥을 남편이 차려먹여서 보내기는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밥보다 더 불편한 건 아침에 나가는 아이를 배웅해줄 수 없다는 거였다.  아이가 자는 새벽에 몰래 나간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고통스러웠다. 날마다 마음을 담은 쪽지를 써서 아이가 그날 신을 양말과 옷 위에 올려두고 나가면서 피눈물이 났다. 차라리 아이와 그나마 엇비슷한 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 풀타임워킹맘의 처지가 나을 것 같았다.


반면 미들근무는 아침에 엄마의 임무를 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원 한군데 정도를 들르고 난 딸을 내가 데리고 와서 풀타임엄마와 비슷한 하루를 소화할 수 있었다. 학원이 끝난 아이를 직접 데리고 와서 장을 봐다 간식을 해먹이고, 엄마표로 숙제와 공부를 봐주고, 아이 친구를 만나 같이 노는 플레이데이트를 하고, 저녁을 해서 먹인 후 잠자기 전에는 책을 읽어주고. 그 모든 게 가능했다. 그걸 깨달은 미들 첫 근무날은 너무 행복했다. 이거야말로 알바를 시작하면서 원했던 두마리토끼를 모두 잡는 근무형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두마리토끼를 잡으러 뛰었던 나는, 오픈근무나 마감근무때보다도 더 빠르게 지쳐갔다. 보통 워킹맘은 워킹맘인 대신 포기하는 것들이 있기에 운영된다. 근데 미들근무를 하면 포기를 하나도 안하는 스케줄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다른건 하나도 포기를 안하는 대신에, 나 하나만 포기했다.


몇년간 걸리지 않던 독감에 걸렸다. 기침을 달고 살았다. 그 무렵 생일선물로 차돌박이와 공진단을 선물받았을 정도로, 내 건강은 남들이 보기에도 안좋아보일만큼 악화되었다. 내가 원래 약골인것도 아니다. 공진단을 먹은 건 생전처음이었다. 하나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미들근무 스케줄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아야 했기에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미들근무는, 세가지 근무형태 중에 가장 재미도 없었다. 미들근무는 지루한 경우가 많다. 점심시간 러쉬가 끝나고 출근을 하면 정말 다섯시간이 끝도 없이 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픈 근무에서 느낄 수 있는 원두채우기의 기쁨 같은 것도 없고, 마감근무에서 느낄 수 있는 서비스직으로서의 인간애 또한 느낄 여지가 적다. 나 말고 다른 바리스타들도 미들근무 때가 제일 시간이 안가고 은근히 힘들다는 말을 했었던 걸 보면 이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둘 다 잡을 수 있는 근무형태는 없었다. "세상일은 이것 아니면 저것의 선택이지 둘 다는 아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 말이 딱 맞았다. 그래도 그때 역시 얻은 것도 있었다. 모든걸 잃는 시간은 없다. 그 칠개월 동안 나는 아이가 클 때까지는 좀 더, 육아에 치중하는 게 나에게는 맡다고 느끼게 됐는데 그렇게 다시 엄마를 풀타임으로 차지하게 된 딸은,  '너무 싫었지만 재미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그때를 회상한다. 엄마가 오픈근무를 할 때 아빠가 떠준 밥은 너무 수북해서 먹기가 어려웠다고. 아침에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학교에 가면 오후에 만나는 엄마를 더욱 애절하게 기다리게 되었었다고. 엄마가 쪽지를 자주 써주고 크고 작은 선물을 많이 해주어 조금 좋았다고. 어느 때고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 엄마의 소중함을 언제보다 잘 느끼게 되었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박새로이의 성공을 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