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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Mar 04. 2020

카페알바이야기 주말근무편

베이글은 주말에도 잘 팔린다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 내 닉네임은 레이첼이었다. 프렌즈의 레이첼의 이름을 따온 거였다.

극 초기 카페 알바로 일하던 레이첼은, 나중에 패션회사로 옮기면서 패션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거기에서도 커피를 타는 업무를 계속하게 되어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후 패션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상사 조아나를 위해 아침마다 블루베리베이글을 사가는 업무는 여전히 중요한 일이었다.


한번은 블루베리베이글이 다 떨어져서 레이첼이 할 수 없이 어니언베이글을 사는 장면이 있었는데, 우리 매장에서도 블루베리베이글이 소진되는 속도는 매우 빨라서 나는 블루베리베이글을 팔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리곤 했었다다. -언급하는 미드에서 자꾸 연배가 보이는 것 같지만 빅뱅이론의 라지도 베이글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는 미국이 최고라고 말했다-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그때나 지금이나, 치즈베이글과 블루베리베이글은 아침의 최고인기메뉴다. 회사에 가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말아침에도 베이글은 금방 소진됐다.


"여보 어떡하지? 베이글이 다 떨어졌다는데."


주말아침이면 이 말을 전화를 통해 전하는 아빠들로 카페가 가득차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의 손을 잡고 아침식사로 일용할 베이글과 커피를 사러 나온 아빠들이었다.


주말오전이면 가족단위 고객들이 많았다. 가족단위라곤 하지만 사실 아빠와 딸, 아빠와 아들 같은 식으로 둘이서 손을 잡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엄마를 뺀 가족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여지없이 푸드가 들어있는 칸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가족적인 분위기의 가족들인지,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아끼고 평일에 아내에게 치중된 육아의 짐을 존중하는 지를 느끼게 하는 행동들이었다.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완전히 '자유'다. 그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에게 온전히 자유인 주말오전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드러내 보인다. 주말근무에서는 평일과는 다른 것들이 보여 즐거웠다. 고객들 각자가 주말을 보내는 방식들에서 각자의 삶의 가치관이 보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영어스터디를 하는 사람들. 장성한 딸과 여전히 사이가 좋은 아빠들. 동네친구들을 만나 점잖게 대화하는 평소에도 교양이 넘쳤던 할머니들. 지금 떠올려도 기분좋은 사람들로 가득찼던 한가한 주말오전 카페가 그립다.


고객이 없는 주말은, 정말로 너무너무너무 한가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느 비오는 일요일의 미들 근무에서는, 같은 시간대에 근무하던 파트너의 사생활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게되기도 했다. 냅킨접기, 캐리어제조, 컵채우기, 모든 것을 다 해도 시간이 남을 정도였다. 그래서 아이와 남편에게 마칠 시간즈음해서 매장에 와있으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일이 터졌다. 아마도 근방에서 결혼식, 종교행사 쓰리콤보라도 터진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음료를 찾아갈 것을 외쳤고, 아수라장 같은 매장의 모습에 아이와 남편이 왔어도 눈길 한번 주지를 못했다. 아이가 찾아왔기에 초콜릿 음료를 마지막 퇴근음료로 만들어나가며, 동료들을 남겨놓고 나가기가 미안할 정도의 그런 날이었다. 매장 문을 나서자 조금 먼저 나와있던 아이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는데,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딸이 먼저 입을 뗐다.


"엄마 진짜 힘들겠다....."


서운해하지않고 힘들었을 엄마를 걱정해주는 딸 덕분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처럼, 카페의 주말은 복불복이다.


보통의 경우 오픈과 미들, 마감 각각의 업무특성을 파악한 후에는 대부분 출근 전 그날의 고난이 예측이 되곤 했다. 그런데 주말의 경우 그런 예측이 거의 들어맞지 않았다. 주말의 강력한 변수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결혼식, 종교행사의 유무다.


 매일같이 반복적이고 예측가능한 평일의 삶과는 다른, 예측불가능하고도 자유로운 주말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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