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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Feb 26. 2020

박새로이의 성공을 빈다

서비스직을 위해 태어난 그가 회사를 떠난 이유

카페알바의 중요한 능력은 실없는 농담을 잘하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실없는 농담을 고객과 주고받으면서 친분을 쌓고 기분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실제로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회사에서는 이런 것을 스몰톡이라고 부르며 장려했다. 한번씩 점장이 그것을 지침처럼 내리기도 했다. 나 역시 바리스타를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기대했던 것이 친한 고객 만들기였던만큼, 그게 싫지않았다. 오히려 기쁘게 했다. 친해진 고객이 내게 뭐가 맛있냐고 묻고선, 내가 계산해준 그 간식들을 내게 선물하고 간 적도 있을만큼, 실없는 농담으로 친분을 쌓고 고객과 친해지기 는 카페알바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재미있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이 몹시 한정적이었다. 이미 기분이 좋아보이는 고객을 향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나는 서비스직계의 중수, 어쩌면 하수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단골고객 중, '어려운' 고객이 있었다. 그 고객은 대체로 다정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무언가 마음에 안들면 곧바로 심하게 인상을 찌푸리곤 해서, 알바 초기의 나는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유난히 지쳤던 어느 날, 유리창 밖으로 그가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을 때 나는 괜시리 다른 일을 바쁘게 하며 선임바리스타가 주문을 받게끔 했다. 미안한 마음에 머그를 부지런히 씻어서 나오는데, 고객에게 대응하는 선임바리스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객님. 저 싫어서 그런거 아니잖아요. 전 다 알아요."

"어, 고객님 지금 웃으신거죠? 오늘 추워서 그러신거죠? 코 빨개지셨는데. 오. 눈물도 나왔어요."


정말이지 그는 서비스직계의 아이언맨이었다. 주부인 나를 어려워하거나 불편한 티를 내지도 않고 마냥 친절한 사람이었다. 고객을 향한 억지 프로페셔널리즘이 아닌, 가식도 아닌, 진짜로 태생적으로 서비스직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서비스직 적성에 알맞으면 그만두라고 함부로 말하는 말들이 어쩌면 맞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이언맨의 시대도 끝이 난다. 어느날 그가 퇴사를 한다고 했다. 대체 왜 퇴사를 하냐, 다른 좋은 곳에 취직이 된거냐고 묻는 내 말에 그는 "그런것은 아니고 너무 힘들어서 쉬려고 한다"고 답했다. 결국 아이언맨도, 서비스직이 힘들었던 거다.


서비스직의 정의가 고객이 개떡같은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무조건 생글생글 웃는 것을 말한다면, 그게 천직인 사람은 없다. 장담할 수 있다. 만약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서비스직에 적합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잘 참고 순하며 인성이 좋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한 '적합한'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좋은 성정은, 회사들이 가공해 파는 주요상품이 된다. 회사들은 서비스직이라는 직군을 창출하면서, 인간감정의 상품화에 앞장서왔다. 혹실드는 그의 저서 <관리된 마음. 인간감정의 상품화>에서, 감정을 공적영역에서의 노동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그는 회사들이 감정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분석하고, 그 상업적 활용으로 인한 감정소외의 문제를 논한 최초의 학자였다. 그에 따르면 특히 여성이나 힘없는 이들이 직업으로 택하는 감정노동에서 이러한 감정의 통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곧, 힘이 없는 사람들의 개성이 기꺼이 무시당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직업에서 감정적인 노동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대면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의 '좋은'감정을 만들어내기를 강요받는 직군은 서비스직 뿐이다.


-직원이 먼저다.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것, 고객접객태도를 고가에 반영하는 것, 고객의 소리 같은 게시판을 활용해 직원에게 상벌을 내리는 것 등이 모두 '감정' 자체를 자산으로 삼아 영업을 하는 것의 일환이다. 즉, 감정 자체가 매출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자산인 것이다. 하지만 회사들도 알아야 할 것은 직원의 감정 또한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직원이 홀대받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 점차 애사심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수동적인 사람들만 남게 될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일했던 프렌차이즈의 경우에도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봐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알바 하나하나의 경우여도, 매장을 잘 알고 일이 익은 직원이 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사람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웹툰기반 인기드라마 <이태원클라쓰>에서, <단밤>의 사장인 박새로이는, 진상고객에게 무례한 일을 당한 자신의 '알바'에게 대신 사과한다. 그의 '내사람 먼저' 정책은, 적어도 드라마에서만큼은 바른 인력관리방식으로 통해 머잖아 큰 성장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손님이 왕이다'가 통하던 시절 알바에게 조금만 기분이 상해도 "사장 나오라 그래"를 외치던 관행들이, 다행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돈을 낸다고 해서 누군가를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새로이같은 관리자가 늘어나고, '손님이 반말하면 알바도 반말'이라고 주장하는 사장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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