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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Feb 11. 2020

오피스와이프를 가장 생생하게 볼 수있는곳

나는 카페가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소소한 고민글이 올라오는 한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예쁘게 차려입었을 때랑 아닐때랑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져요. 특히 백화점이나 카페 직원들이 그래요. 외모지상주의는 몇살까지 지속되나요?>


그 질문에 대한 답글들 중 한 답변이 눈에 띄었다.

 

<저도 겪어 봤어요. 카페직원들이 인성이 별로라 외모만 보고 무시해요. 걔네가 솔직히 진입장벽이 낮잖아요.>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과 인성의 상관관계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페 직원이 되는 것이 비교적 쉬운 것만큼이나, 카페 이용객에게도 카페라는 공간은 진입장벽이 낮다. (음료를 한잔만 시킬 경우) 오천원 가량의  돈으로 몇시간이고 이용할 수 있는,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공간을 사는 것이어서 별 사람이 모여든다. 심지어 돈을 안내는 것도 가능하다. 나 역시 그냥 무작정 들어와 엎드려있거나 누워있는 노숙자를 쫓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카페에서 일하다보면, 생각보다 고객의 면면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정보를 캔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드러내 보여주는 행동들을 반복적으로 보다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난 수많은 사람 중  '특별한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늘 함께 방문했고, 주로 출근피크시간을 조금 넘긴 이른 오전에 방문했다. 둘 다 오피스룩으로 쫙 빼입은 모습이었고, 막 출근했다는 사실이 어색할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신혼부부이겠거니 했는데, 어째 점점 이상한 대화들이 들렸다.


"오빠 와이프는 몇시에 나가?"

"니네 신랑은 이번 주말에 어디가?"


말로만 듣던 '오피스 스파우즈'였던 것 같다. 그들은 사람이 적은 오전의 커피숍이 사람이 없는 자신들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여겼겠지만, 카페는 개인적 공간은 될 수 있어도 은밀한 공간은 될 수 없다. 오피스 스파우즈를 가장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은 어쩌면 오피스가 아니라 카페다.


사람들은 카페를 각양각색의 이유로 방문한다. 커피를 사러 오는 사람 만큼이나, 공간을 사러 오는 이들이 많다.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라는 책에서는 이같은 공간대여전략이 스타벅스의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누군가는 비밀리에 출근길 데이트를 즐기러, 누군가는 잠깐의 수다를 떨 여유를 갖기 위해, 누군가는 점심을 거르고 엎드려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방문한다. 술을 깨려고 야심한 밤 뜨거운 커피로 해장을 하려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이들은 나름의 은밀한 공간에 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카페의 일정공간을 잠시 사더라도, 어쨌거나 그곳을 찾은 모두가 함께 공유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너무 시끄러우니 저들을 조용히 시켜달라고, 한쪽에서는 여긴 너무 더우니 온도를 조절해달라고.  하루에도 숱한 이해관계들이 부딪혔다.


고흐는 테오에게 쓰는 편지에서 자신의 그림인 <밤의 카페>에 대해 언급했다. 사흘밤낮 잠도 자지 않고 그린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고흐는 "나는 카페가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고흐는 화폭을 통해 나보다 몇백년 앞서 진상일기를 써내려간 최초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고흐는 그 말의 이유에 대해 부연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가 워낙 카페를 자주 이용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 고흐가 살던 시대의 파리의 카페는 살롱의 형태로, 지금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서구에서 들여온 대형프렌차이즈 커피체인은 당시의 살롱과 여러가지 면에서 닮았다. 공간을 점유하러 온다는 점, 다양한 사람들이 오랜 시간 모여앉아있다는 점, 그 안에서 대화와 토론들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많은 이들이 모이면 필시 그 가운데 진상이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카페라는 특수한 공간이 미친 사람 을 만들어낸다기보다, 세상에 미친 사람이 많아서 카페에도 모여든다고 하는 설명이 맞을 것이다. 각자 바라는 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그 가운데 분노와 진상이 빚어진다면,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아진다면 그만큼 카페에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좀 더 아름다워질 것 같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은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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