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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Feb 07. 2020

딸기알러지가 있는데도 딸기를 먹은 이유

다칠 것을 알면서도 감행하는 일들이 있다

뭐니뭐니해도카페알바의 '꽃'은 복지음료가 아닐까. 편의점 알바는 폐기를 기다렸다 먹는 도시락이 큰 낙이고, 음식점 알바는 스텝밀을 맛있게 해주는 사장을 만나면 행운이라고 들었는데, 이 중 카페알바만 경험해본 나는 개인적으로 카페 알바의 즐거움이 단연코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카페알바는 커피를 비롯한 음료들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심지어 시판 메뉴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매력이다. 자기 마음대로 만든, 메뉴판에 없는 음료를 마실 수 있다니!!!


내가 일한 곳은 무료음료를 하루에 두잔 마실 수 있었다. 보통 한잔은 조금 일찍 출근해 멍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두번째 음료는 브레이크타임에 만들어먹었지만 가끔 행복한 퇴근길을 위해 둘 중 한번은 참고 물만 마셨다. 그러면 근무하는 내내, 퇴근길 음료로 무얼 만들어먹을까를 고민할 수 있다. 그건 문자 그대로 행복한 고민이었다.


물론 나는 초짜 바리스타여서, 내가 만들어낸 '획기적인' 메뉴들은 대부분 맛이 별로였다. 추가한 부재료들은 대부분 안하느니만 못했다. 한번은 밀크티파우더를 잔뜩 넣어 쉐이크 음료를 만든다음, 왜 이런 메뉴가 출시되지 않는 것인지를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베테랑들은 남다르다. 역시 모든 분야에서 '짬'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관리직급들이 만들어주는 스페셜음료는 그 퀄리티가 남달라서, 왜 이걸 회사에서 정식메뉴로 채택하지 않는지 대신 건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는 일년에 한번이던가, 정기적으로 사내음료레시피 공모전을 열고 있었고, 여러 바리스타들의 건의로 채택된 음료들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알바가 되기전에는, 다양한 메뉴를 마셔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마셔본 게 너무 없어서 레시피를 외우는 필기시험을 보는 동안 머리에 그 음료가 떠오르지 않아 더 애를 먹기도 했었다. 내가 마시는 음료가 거의 일정하게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구십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간혹 아메리카노가 먹기 싫은 날에는 라떼를 먹는다. 그마저도 시럽이 들어간 바닐라라떼류는 먹지 않는다.


그래서 레시피를 처음 전달받았을 때, 정말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십년 넘게 이 카페의 고객이었는데, 이름조차 처음 보는 메뉴들이 많았다. 내가 암기의 고통을 호소하자 한 선배바리스타는 메뉴판의 모든 메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마셔볼 것을 권했다. 정말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맘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정도로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다는 걸, 카페에서 일하며 깨달았다.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알바가 아니었음 만나볼 수 없었을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나는 한번도 마셔보지 않았던 수많은 음료들도 마셨다. 첫날 같이 근무한 대학생 바리스타가 추천하며 만들어준 음료는 솔직히 내 입에 안맞았다. 하지만 그의 친절이 고마워서 맛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후로도 그 파트너와 근무가 겹칠때면 일부러 그 음료를 마셨다. 자꾸 마시다보니 점점 맛있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아직까지도 그 음료를 내돈주고 사 마신적은 없다. 하지만 언젠가 왠지 한번쯤은 먹고싶어질 것 같은 감정도 드는데, 왠지 그걸 사 마시면 알바 첫날의 힘들었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를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관리자급 파트너 중 내게 자신의 비장의 레시피를 공개해 마감 때마다 맛있는 음료를 제조해줬던 이도 있었다. 마감은 청소가 팔할인데, 바쁘게 청소를 하고 있으면 그 파트너가 "음료 만들어서 책상에 뒀어요"라고 외치곤 했던 게 떠오른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정말 맛있는 음료였다. 이미 연차가 오랜 파트너 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레시피라고 했다. 그 레시피를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나는 자주 그 음료를 그 파트너에게 요청했고, 어느날은 마감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파트너가 백룸 책상 위에 올려둔 내 마감음료 안에 평소엔 찾아볼 수 없었던 딸기 두 알이 들어있었다.


때는 딸기프로모션기간이었다. 본사에서 배달되는 생딸기 꼭지를 제거하고, 소독하고, 잘라서 보관하는 일이 몹시 성가신 프로모션이었다. 하지만 생딸기가 남으면 간혹 먹어볼 수도 있다는 기쁨에 모든 파트너들이 신나 있던 기간이기도 했다. 물론 딸기는 비싸고도 소중한 부재료여서, 판매 전 레시피를 연습하면서 음료를 만들어 볼 때조차 딸기는 빼고 만들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우리들은 딸기를 아꼈다. 그런 금딸기를, 그 파트너는 내 마감음료에 넣어주기 위해서 따로 빼두었다가 넣어준 것이었다. 감동으로 가슴이 찡해오는 걸 느꼈다. 솔직히 눈물도 조금 나왔던 것 같다.


사실 그 딸기프로모션기간에, 적어도 나만큼은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딸기알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딸기를 먹으면 식은땀이 나고 심한 복통과 두통을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딸기를 먹었다. 알러지가 있음을 안 이후, 내 인생 딱 세번째 딸기였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 새로운 맛. 나는 그날밤의 딸기에서, 한층 크고 깊어진 내 세상의 맛을 봤다. 물론, 딸기를 먹고 그날 밤 나는 아팠다. 하지만 때론 내가 다칠 것을 알면서도 감행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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